[시]
개망초 9 / 김주완
하대하여 부르는 설운 이름이지만 정작 그들은 서러움을 모른다 하루만큼 자라고, 핀 꽃 질 때까지 이어가면 그만이다 남들이 천하다면 어떤가 끈질긴 야생으로 끼리끼리 모여 오순도순 살아가는 개망초, 시장통 모퉁이 반월이용소 거울에는 하루에도 몇 번씩 개망초가 핀다 장날도 무싯날도 핀다 이발사 소달희 사장도 개망초꽃이다 왜관컴퓨터세탁소 앞 노상에서 보자기를 펼쳐놓고 푸성귀를 파는 닥실할매, 생선 내장을 하루 종일 파내는 외팔이 구씨, 모두 모두 개망초꽃이다 캠프캐럴 담장 밖에도 개망초는 핀다 고엽제를 묻었던 말았던, 다이옥신이 검출되든 말든 아무 것도 모르고 지하수를 퍼마시며 개망초는 핀다 옆집, 뒷집, 앞집 사람들이 암으로 죽어 나가도, 얼굴 두꺼운 정치인과 관료들이 부산을 떨며 다녀가도 그러려니 하고 개망초는 핀다 헛욕심 부리지 않고 맘 편하면 된다면서 작은 얼굴에 보오얀 웃음을 내건다 자잘하게 뜯어놓은 이불솜 조각 같은 얼굴을 바람이 밟고 지나가면 물결처럼 누웠다가 느긋이 일어난다 ― 나는 이렇게 내 생을 살고 새끼들은 멀리 멀리 퍼져나갈 것이니, 너희는 너희대로 너희 삶을 살아라 깜깜하게 눈먼 너희 길을 가거라 ― 도솔천으로 오르는 개망초 하얀 이승의 행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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