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2.21.대구시협 2012년 연간사화집 『대구의 시』142~143쪽 발표
[시]
속 7 / 김주완
대화는 겉돌았다 속으로 들어가기 위하여 쉼 없이 밖으로 나가는 습성, 대기권을 뚫고 나간 우주왕복선은 우주정거장에서 되돌아왔다, 우주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기껏 그쯤에서 회귀하는 타협은 신품종 화훼의 개화와 비슷하다
꿈의 거처는 속이다 나는 수선화가 꾸는 꿈을 알지 못한다 하얀 미소나 노란 울음의 절정을 가끔 보지만 그녀의 꿈을 보지는 못한다 열매 맺지 못하는 이유도 모른다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헛꽃 같은 웃음을 날리는 것이 우리의 가상한 소통이다
강물은 석양의 물감을 기다렸는가, 붉은 한恨을 몸속 깊이 풀고 있다 기다림의 소재는 속이다 발설하지 않고 속으로 숨기며 내가 오래 기다린 사람은 그대가 아니다 또한 그대에게는 내가 아니다 일급수의 열목어 눈빛 같은 말은 각자의 속에만 있다 속을 터놓는 일은 애당초 할 수가 없다 기다림은 실로 어리석은 일이다
속이 뒤집힌다 욕지기가 솟는다 천지를 뒤덮는 화산재, 시계 제로의 길 위에서 길을 찾는 저 숨 막히는 질주, 외면 이외의 제동장치는 처음부터 없었다 하얀 충돌만은 피해야 하는데
속은 거처가 분명하지 않다 읽기가 난해한 오독의 늪이다 속에는 주소가 없다 번번이 주소 불명이라는 도장이 찍혀 반송되는 실낱같은 꿈, 꿈의 해석은 몽상이다 달을 노래하는 시인의 눈은 근시안이 분명하다 보이지 않는 속을 보겠다고 매달리는 예지의 근시안, 불통의 소통학을 굳히면서 겉도는 대화를 끝낼 때가 되었다 일어서서 출입문 쪽으로 걸어갈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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