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바람의 길 3 / 김주완
기상예보는 번번이 빗나갔다 발달한 장마전선이 한반도를 오르내리며 군데군데 폭우를 쏟아 부어도 칠곡 땅에는 비다운 비가 내리지 않았다 강철이가 앉았다는 말이 나돌았다
불안한 바람은 어둠 속의 청설모 눈처럼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 황량한 숲을 배회하는 사람들의 건망증은 겨울잠을 자지 않아 생긴 만성피로증후군에서 연유한다
캠퍼캐럴 담장 밖, 은사시나무 가지 끝에 찢어진 깃발처럼 세찬 불길이 걸렸다 환경오염보고서 원본이 공개되었지만 고엽제 매립의혹은 여전한 의문으로 남아 있다 환경단체와 민간조사위에서 줄기차게 요구하는 토양성분조사와 매립지 발굴, 인근주민질병역학조사는 하염없이 미루어지고 있다 정부 요인들이 한두 차례 요란하게 다녀가고 한미공동조사단의 활동이 지지부진하는 동안 1978년의 사건은 희미하게 탈색되고 있었다 다이옥신의 공포도 조금씩 휘발되고 있었다
사대강 사업 낙동강 24공구, 왜관읍 시가지를 끼고 오른쪽으로 흘러내리는 강심에는 주혈흡충 같은 준설선이 떠서 밤낮으로 강바닥 모래를 빨아내었다 굴착기와 덤프트럭은 긁어낸 모래를 어디론가 실어 날랐다 6.25 전쟁 61주년이 되던 날, 새벽 3시 50분 ‘호국의 다리’로 불리는 왜관철교가 무너져 내렸다 등록문화재 제406호, 사람 전용 통행로인 인도교의 수몰에 길을 잃은 왜관 사람들은 아득한 상실감으로 크게 상심했다
4대강 복원과 고엽제 진상규명 촉구 생명평화미사가 성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에서 열리고 가두시위와 빠른 진상규명이 촉구되었지만 양심의 소리가 너른 벌판을 넘어가기엔 언제나 미약했다
불의 재앙과 물의 재앙은 이미 이재二災로 와 버렸다 사람들은 삼재三災만은 오지 않기를 바랐다 이제 남은 것은 바람의 재앙뿐이다 마음을 찢고 사람들을 갈라놓고 마을과 마을을 두절시키는 선거바람, 사람들은 삼재만은 오지 않기를 정말로 바라고 있다 한풀 기세가 꺾인 바람이 은사시나무 가지 사이로 가까스로 빠져나가기를 숨죽인 채 기다리고 있다 바람의 길이 끌고 가는 역사의 길목 언저리에서 민심이 천심인지를 초롱초롱 바라보고 있다
<2011.07.0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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