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시집『엘리베이터 안의 20초』(1994)]
떠오르는 저 편 12 / 김주완
늦은 봄날에 비가 내렸다.
나무는 젖으면서 말하고 있었다.
깜깜한 혈관을 가리고
무성한 시간을 토해내고 있었다.
꽃같이 화사한 언어였다.
물 먹은 새 잎 너머로
화요일과 수요일 사이의 환상이
현실적인 그리움으로 떠오르고
나의 자리를 떠나
가만히 나무 곁에 서 본다.
하얀 나무의 손을 잡고
나무속에 가라앉고 싶어진다.
따뜻한 수액 속에 온 몸을 담근 채
바로크의 성벽처럼 찬란히
허물어지는 계절의 역사.
비가 내리는 늦봄의 오후에
자유의 바다가 표류하고 있었다.
나무가 외롬에 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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