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 시집 수록 시편/제3시집 엘리베이터 안의 20초[1994]

떠오르는 저 편 12 / 김주완

김주완 2011. 3. 14. 12:01


[제3시집『엘리베이터 안의 20초』(1994)]


   떠오르는 저 편 12 / 김주완



늦은 봄날에 비가 내렸다.

나무는 젖으면서 말하고 있었다.

깜깜한 혈관을 가리고

무성한 시간을 토해내고 있었다.

꽃같이 화사한 언어였다.

물 먹은 새 잎 너머로

화요일과 수요일 사이의 환상이

현실적인 그리움으로 떠오르고

나의 자리를 떠나

가만히 나무 곁에 서 본다.

하얀 나무의 손을 잡고

나무속에 가라앉고 싶어진다.

따뜻한 수액 속에 온 몸을 담근 채

바로크의 성벽처럼 찬란히

허물어지는 계절의 역사.

비가 내리는 늦봄의 오후에

자유의 바다가 표류하고 있었다.

나무가 외롬에 떨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