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시집『엘리베이터 안의 20초』(1994)]
떠오르는 저 편 13 / 김주완
동북로를 달리며 강을 태질했다. 연한 풀잎을 밟고 밟고 흐르는 강물의 음란함을 심판했다. 수려한 물돌의 얼굴에 허망한 적의를 보내며 바람 속을 날으고 있었다. 흩어진 살과 뼈를 주워 눈물 몇 방울 후둑후둑 뿌리며 풍장風葬했다. 높은 가지 위에서 서두르는 패장敗將의 위험한 귀환이었다. 찬란한 적국敵國의 봄밤을 뒤로 두고 에드바르트 뭉크*의 더듬거리는 말마디 몇 개 어둠 속에 절룩이고 있었다. 동북로 근처 어디쯤, 다시 20년을 싸안아 한 주일을 마감하던 지역, 나무는 잔인한 잎들을 끝도 없이 나부끼고 있었다.
* 에드바르트 뭉크(Edvard Munch, 1863~1944) : 노르웨이의 화가. 작품으로 <병든 소녀>, <절규>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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