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 시집 수록 시편/제3시집 엘리베이터 안의 20초[1994]

깜깜한 웃음을 / 김주완

김주완 2011. 3. 14. 11:51


[제3시집『엘리베이터 안의 20초』(1994)]


   깜깜한 웃음을 / 김주완



누가 뒤에서 웃고 있는

돌 앞에서 말을

해본다,

푸른 빛, 속의

여린 말 한 마디 무겁게

하여 본다,

말은

벽에 부딪쳐

코가 날아가고 입이 부서지고 눈이 빠져

만신창이로 돌아

온다,

피를 줄줄 흘리는 말의

시체 위로

차가운 쇳소리를 내며

웃는 돌 저편의 냉소

같은 게 낮게

낮게 쌓이고 있다,

말들의 매장이 끝나기 전

몇 개 살아 있는 속의

말들은 

황급한 은둔을 시작하고

이질異質의 먼 밀물이 만조滿潮

차오른다,

여전히

절벽 너머에서 누가

자꾸 깜깜한 웃음을

웃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