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시집『엘리베이터 안의 20초』(1994)]
낯선 도시의 어둡고 길고 눅눅한 굴/김주완
열쇠는 없었다. 그러나 열려하고 있었다. 우리 사이의 높은 벽은 완고한 침묵이었다. 잠긴 문門은 열어라 하며 더욱 육중하고 빈주머니에 묶인 채 맹목盲目은 마비되고 있었다. 낯선 도시의 굴은 어둡고 길고 눅눅하리라, 나는 굴 밖의 한기에 떨었고 굴 안에서는 속이 허한 바람소리 들렸다.
됨은 될 수밖에 없는 도시의 낯선 거리에 문門들이 떠다니고 있었다. 지천으로 뒤척이는 물결은 하나씩의 문門들을 달고 굴을 은폐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도둑을 지키고 있었다. 열쇠 없이 문門을 따는 자를 낱낱이 징벌하곤 하였다. 그러나 문門들의 문양은 화려하였고 더러 하늘하늘 손짓하는 향목香木도 있었다.
그날 밤 파란 두개골이 부서진 새 한 마리 보았다. 하늘 끝의 냉랭한 추위는 녹였을까, 견고한 벽에 묶인 문門의 울음소리 들었을까, 굴은 벽 너머 돌아눕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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