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시집『구름꽃』(1986)]
구름꽃 1 / 김주완
처음에 너는
지리산 천왕봉 아래
뱀사골 부근을 휘돌아 내리거나
화엄사나 쌍계사 계곡 아래로
콸콸 뛰어 내리던 질박한 소리,
투명한 노래였을 것이다.
맑아서 가늠할 수 없는 네 깊이를
그때부터 추스르고
먼 바다와 빈 하늘 모퉁이로
날마다 하나씩 꿈을 띄워
언젠가 올 비상을 기다렸을 것이다.
사계四季를 모두 품속에 안고
사랑 한 자락을
서리서리 온 몸으로 감아
아직 아무도 발자국 남기지 못한
천년 바위틈으로 일어서는
자욱한 물안개
철따라 붉음도 푸름도
그리고 새하양도
네 몸을 통으로 물들여 왔지만
모든 색을 받아들이며
어느 색에도 물들지 못하던
너의 혼은 바로 영원한
투명,
숲과 산이 네게 드리우던 그림자
끝내 의연한 자세에 흔적도 없이 거두어 가고
묵고 굳은 순리의 지배에
너는 고개 숙여
스스로의 그림자를 만드는 힘든 작업으로
말간 네 몸을 뒤척였을 것이고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긴 노정路程에 올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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