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돌밭 가는 길 3 / 김주완
흙먼지 날리며 타박타박 오르던 언덕길을 다시 간다, 지금은 포장된 도로 옆으로 찔레넝쿨이 없어졌다, 싸하니 코를 뚫고 가슴으로 파고들던 찔레꽃 향기도 없어졌고, 낙동강을 도하한 인민군의 해골이 숨어 있던 도랑의 풀숲도 없어졌다, 이 길 오르면 아홉 덩이 바위가 있어 이름도 돌밭石田인 마을이 있다, 광주 이씨가 우거寓居하여 세거지지世居之地로 삼고 먼저 자리 잡은 벽진이씨와 아랫돌밭 웃돌밭으로 오순도순 살아온 옛 고을이다,
구왜관이 있던 백포산성터는 강 건너에 있고 이쪽에 있는 소읍 왜관의 시가지도 저 아래이다, 높은 곳에서 아래를 바라보는 곳이라 하여 '관터'라고도 불리는 이곳에서 벽진이씨, 광주이씨 양반네 선조들은 낙동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왜인들을 보며 망연했을까, 왜인들이 물러가자 뒤이어 미군들이 널널이 들어오고 기지촌이 자리 잡을 때 그들은 또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
수난의 땅, 가운데 자리 잡은 돌밭의 발치로 경부선 열차선로가 놓여 있다, 낙동강 철교를 쿵쿵쿵 건너와 자고산 기차 굴을 빠져 나온 완행열차는 늘 기적을 울리며 풀썩풀썩 허공으로 연기를 쏟아냈다, 워크라인*을 밀고 밀리며 산화한 피아간의 병사들, 차마 떠나지 못한 영혼들이 그때마다 벌떡벌떡 일어나곤 했다,
언덕배기를 지나면 금방 문양文陽할매 대갓집이었다, 집 뒤쪽으론 너른 과수원이 아득히 열려 있었다, 날아갈듯 들어 올려진 부연에 기가 죽으며 들어서는 기와집 안채에는 문양할매가 안방 아랫목에 앉아 있었다, 단아한 한복차림의 눈이 크고 얼굴이 맑은 문양할매는 까치가 파먹다 만 사과를 내와서 깎아주었다, 문양할배의 사랑채에선 간혹 헛기침 소리만 들려왔다,
돌밭 사과가 핏빛으로 익는 이유를 그때 나는 모르고 있었다,
* 워크라인 :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8월 1일 미군의 워크 중장이 설치한 낙동강 방어선
<2008.03.14.>
'제1~7 시집 수록 시편 > 제4시집 오르는 길이 내리는 길이다[2013]'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 돌부리 / 김주완 [2010.08.06.] (0) | 2010.08.06 |
---|---|
[시] 가을안개가 지나는 왜관 점경 / 김주완 [2008.11.07] (0) | 2008.11.07 |
[시] 아카시아꽃 1 / 김주완 [2008.05.09.] (0) | 2008.05.09 |
[시] 내 안의 철새 2 / 김주완 [2007.10.19.] (0) | 2007.10.19 |
[시] 천출 / 김주완 [2007.05.15.] (0) | 2007.05.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