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언령' 창간호(2007.08.01.) 수록>
천출 / 김 주 완
밤마다 아비는 들판 자욱한 참대 밭을 꿈꾸었다. 하늘 끝을 찌르는 아름드리 대나무의 송곳 같은 외줄기들, 쳐다보면 바소꼴 댓잎 사이 먼 하늘이 푸른 물무늬가 되어 아득하니 현기증을 일으키는 꿈이었다. 들판 가득 칼바람 몰려와도 잠시 건들건들 몸 흔들어, 조각낸 바람을 흩어버리는 의연한 기상이 절절히 그리운 날밤이었다.
대낮에도 아비 눈엔 참대 밭이 선했다. 참대처럼 꼬장꼬장 허리 펴고 살았다. 사람들의 곁눈질도 상관 않았다. 참대가 된 아비는 말이 아닌 몸으로 자존自尊하였다. 은자隱者가 되었다.
새벽들에 나갈 때마다 이리저리 참대 순을 찾아 살폈다. 덩덕새머리 풀숲을 헤집고 설핏 나온 참대 모양 작은 순을 찾은 아침, 아비는 잠시 몸을 떨었다. 혹여, 참대 순이 아니어도 괜찮았다. ‘참대 밭에 쑥이 나도 참대같이 곧아진다.’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참대 밭에 참대 난다.’ 그 말이 그 말이지…,
누운 참대 순을 바로 세웠다. 단단한 받침대도 세워 주었다. 받침대가 몸속으로 파고 들어가 척주脊柱가 될 날을 기다렸다. 그러나 참대 순은 영영 일어설 줄 몰랐다. 자꾸 더 누웠다. 설설 잡풀 속을 기면서 내내 옆으로만 벋어나갔다. 아비를 거부하는 반역, 잡풀 속이 그리 좋았을까, 자존自尊을 유기遺棄한 자존自存이었을까,
세워도 받쳐도 곧추서지 않는 청미래덩굴 ― 참대 순이 아니어서 끝내 슬픈 아비의 태생胎生은 천출賤出이었다, 천출천출천출 천,
<2007.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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