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2009-12 『낙동문학』 초대시 수록>
내 안의 철새 2 / 김주완
날아올라야 하는데, 지귀志鬼처럼 마음에 불길 일면1) 까마득한 하늘 “회오리바람을 타고 9만리나 올라 유월의 거센 바람을 안고 날아가야”2) 하는데 북녘땅 푸른 뼈 쌓여있는 곳으로, 북명北溟 의 추위가 빠른 속도로 남하하여 속 빈 뼈 시리면 “물결 3천리나 쳐올려”3) 찬바람에 몸을 싣고 삼동三冬 내내 고운 눈발 날리는 남녘땅으로 날아와야 하는데, 그림 같은 평사낙안平沙落雁4)으로 하강해야 하는데
내 속 마음벽에는 신석기의 암각화 하나 들어서 있다 날카로운 돌칼로 쪼아 판 그림, 기럭아비가 안고 온 목안木雁 한 쌍 쓸쓸히 풍화되고 있다 한 쪽 날개 끝이 깨어져 있다 부조浮彫를 벗어나도 날지 못하겠다 뒤뚱거리겠다
하늘길 늘 열려 있어 때마다 떠올라도 되지만 줄지어 까마득히 나르던 기억 생생하지만 먼 곳으로 전해줄 한 아름 소식 안고 있지만, 이계조二季鳥는 지금 이동경로를 이탈해 있다 화석으로 갇혀서 조금씩 죽어가고 있다, 균형 잃은 날개 아닌 날개만 퍼덕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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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삼국유사, <지귀설화>, 지귀는 마음에서 불이 일어(志鬼心中火) 몸을 태우고 화신이 되었네(燒身變火神)
2)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
3)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
4) 평사낙안(平沙落雁) : 기러기가 편평한 모래밭에 내려앉는 모습 / ‘글이나 문장이 매끈하게 잘 되었음’을 비유하는 뜻으로 전용되고 있음
[시작 노트]
어느 여름날, 기러기 농장에 간 적이 있다. 예약손님만 받는 집이다. 철망으로 사방을 두르고 지붕까지 막은 우리 안에서 기러기들은 날지 않고 푸득푸득 기고 있었다. 찬바람을 타고 구만리 하늘로 날아 오르지 못했다. 가지런히 하늘을 가르는 대오도 없었고 평사낙안平沙落雁의 미끈한 맵시도 없었다. 뒤죽박죽의 길짐승이 된 그들은 더 이상 날지 않았다 한쪽 날개 끝이 잘려졌기 때문이다. 균형을 잃어버린 놈들은 왝왝하면서 풀쩍풀쩍 뒤뚱거리고만 있었다. 더 이상 시베리아의 혹한을 피해 나오지 않아도 되는, 놈들은 이제 한반도의 폭염에 헐떡거리고 있었다.
가슴살은 홰로 무쳐 나왔고 몸살은 소금구이고기로 나왔다. 고은 죽으로 뼈와 살이 나왔다. 아직 녹지 않은 시베리아, 혹은 사할린 섬의 얼음 같은 냉기가 거기 서려 있었다. 담백하였다.
이동경로를 벗어난 기러기가 돌아갈 곳은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견고한 철망의 울타리 안에서 허덕허덕 더위를 먹으며 갖가지 요리가 될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필요한 만큼 내 몸을 가져가라’고, ‘가져가라! 가져가라! 가져가라!’고 끼룩대고 있다. 놈들은 잃어버린 자유를 갈망하고 있었을까? 그리운 알래스카를 떠올리고 있었을까?
― 철망의 사방연속무늬 위에 내 전신이 오버랩 되고 있었다.
<2007.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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