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문학동인회, 『봄날의 계단에서 그리움에 젖다』, 서울:도서출판 화남, 2011.04.25., 28쪽 수록.
[시]
부채 2 / 김주완
날벌레 막느라 전등을 꺼버린 여름밤의 마당은 깜깜하고 적요했다 살평상 가 할머니의 손, 대오리로 엮은 낡은 부채는 여름밤 내내 바람을 일으켰다 설렁설렁 이는 바람은 해변의 파도처럼 살평상 가운데의 어린 내 몸을 건너갔다
파도자락 끝으로 몇 마리의 바다고기가 파닥였다 은빛 비늘이 하늘로 떠올라 별 사이 별똥별이 되어 흐르는 반딧불이 오싹했다 어둔 감나무 아래 숙기熟期로 가던 땡감 툭 툭 떨어지는 소리에 깜짝깜짝 마당 귀퉁이 간혹 흔들리고 휘적휘적 두어 번, 꺼져가는 모깃불에 부채질 하면 쓰러질 듯 일어서는 연기 사이로 휘청 빠져나오는 설마른 쑥향 매캐했다
마른 메주 같은 할머니 손가락으로 칠해준 서늘한 담배 침에 모기 독毒 삭자, 웅얼웅얼 자장가에 살갑게 묻어오던 황토 냄새... 스르르 돌담을 넘어가는 구렁이, 먼 파도소리 자륵자륵 들으며 가물거리던 졸음 끝
어린 나는 아침이면 대청마루 모기장 속에 누워 있었다
<2007.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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