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0.31. 『시와 수필』16호 기고]
[시]
땅으로 기다 1 / 김주완
땅강아지는 땅 속에서 산다 넓적한 앞다리로 땅을 파서 흙집을 만들고 눅눅한 곳에서 잠을 잔다 부화한 애벌레는 알껍질을 아작아작 씹어먹으면서 겨울을 난다 눈이 부셔 낮에는 활동하지 않는다 해가 지면 흙집에서 기어나와 슬슬 움직이기 시작한다 어둠에 흥분하여 두 세 시간 날아다니기도 한다 햇빛 보다는 약한 불빛, 시력에 딱 알맞은 거기로 날아가 순식간에 온몸을 덥히고자 한다 그러나 하얗게 부딪쳐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기도 한다 온몸에 돋은 털을 벌벌 떨면서 땅으로 떨어져 실신을 한다 버둥거리다가 생을 마감하는 수도 있다
― 알맞게 보인 빛은 알맞지 않았다
강아지도 아니면서 강아지라는 이름을 얻은 것만도 감지덕지하며 그냥 흙집에서 살거나 두엄더미 근처에서 땅으로 길 것이지 다 늦은 시간에 날기는 왜 날았는지 몰라
― 땅으로 기는 놈은 기어야 한다
<2010.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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