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 칼럼]
<대구한의대학보 제55호 1989.02.20. 3쪽.>
대학의 자유와 민주화
김주완(철학과 교수)
1.
반성의 지평에서 세계는 확대된다. 세계의 확대는 묵은 한계의 초월이며, 새로운 한계의 설정 속으로 들어섬의 자유이다.
보수주의자는 영원히 망설이고 급진주의자는 성급하게 뛰어든다. 그러나 그것은 여전히 미지의 공간이고 불안의 지대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동경한다.
반성은 이상의 가능성의 근거이다. 오로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그것의 끊임없는 시행착오 속에서 역사는 진전한다. 실천의 의의는 반명제로서의 반성의 토양 위에서 꽃을 피운다. 반성 없는 실천은 무모하고 실천 없는 반성은 공허하다.
2.
<혼란과 위기>라는 병.
오늘날의 대학은 병약하다. 교수는 교수대로, 학생은 학생대로, 직원은 직원대로, 재단은 재단대로 피해의식 속에서 긴장과 갈등의 성을 쌓고 소외되어 있다. 이들을 소외케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더 이상 생산수단의 사유(私有)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굳게 닫은 가슴의 문, 의사소통의 단절에서 현대적 소외는 발생한다. 단절은 경직된 위계질서의 소산이다. 위에서 아래로의 일방로만이 뚫린 권위주의 시대의 사생아이다.
결빙의 벽이 녹아내리자 대학은 갑자기 어지럽다.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의 하등한 자연법칙이 밀고 들어온다. 첨예한 대립의 소리들이 춤을 춘다.
3.
대학의 주체는 누구인가? 학생ㆍ교수ㆍ직원ㆍ재단, 이 중의 누가 주체이고 누가 객체인가? 한 집단의 입장만 강변되다 보면 전체의 균형은 무너진다. 주ㆍ객 사이의 종속관계는 관념의 유희이다. 반민주적 사고이다. 편견이다.
대학은 총체성이다. 유기체로 기능하는 산 생명이다. 그러므로 주체논쟁은 무의미하다. 따질 일이 못 된다.
4.
교권은 확립되어야 한다. 스승으로서의 권위, 그것은 권위를 위한 권위가 아니다. 진리에 헌신하는 인격으로서의 권위이다. 고행과 인고로 일관하는 사표(師表)에 대한 고개 숙임이다. 진리는 회의될 수 있다. 그러므로 교권도 반성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결코 훼손될 수는 없다. 대학은 강습소가 아니다.
현대적 의미의 교권에는 가르칠 권리와 배울 권리가 추가되어야 한다. 교육 없는 교권은 없다. 권위에 권리가 추가되고, 권리는 의무로 환치된다. 권리는 의무에 부여되는 특권이다. 권리 없는 의무는 없고 의무 없는 권리도 없다.
5.
대학의 본질은 자유이다. 학문연구의 자유이며 진리헌신과 정의구현의 자유이다. 이것은 절대불가침한 자유이다. 학문은 정치를 초월하기 때문이다. 어떤 정치권력이 하나의 교조를 내세우고 학문연구의 범위를 제한한다면 학문은 전제된 진리의 해설자 역할밖에 못 한다. 이때 학문적 탐구는 쓸모없는 것이 되고 학문은 학문이 아니게 된다.
자유는 민주화의 출발점이고 도달점이다. 대학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한, 사회의 자유는 없다. 대학의 민주화가 실현되지 않는 한, 국가의 민주화는 기대할 수 없다.
6.
대학과 정치현실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상호관련성 속에 있다. 하버마스의 이론이다. 그러나 대학이 정치현장은 아니다. 성숙한 지성과 예지로 역사의 견인차는 될 수 있되 정치현실의 담당자는 아니다. 대상과 방법에 대한 반성의 문제가 여기에 대두한다.
독단의 껍질을 벗고 자기해방을 이루어야 할 때이다. 상호 의사소통의 문을 열고 반성적 지평에 서서 이해의 폭을 넓혀야 한다. 학내외의 문제 전반에 대한 차원 높은 시각을 열어 가야 한다. 대학 본연의 자리를 스스로 찾아 지켜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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