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보 사설)
<경산대신문 제169 1995.11.28.2쪽.>
개혁 신드롬
김주완(철학과 교수)
우리 시대를 풍자하는 연극이 어디선가 무대에 오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러한 연극이 있다면 대본은 다음과 같을 수도 있다.
막이 오르면, 세계화와 개혁이라는 망령이 두텁고 어두운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환상의 무대 위에서 울려 퍼지는 요란하고 현란한 소리(대구 상인동 가스 폭발 사고 /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 전임 대통령 비자금 사건 / 대선자금 지원 문제 등)에 관객들의 혼이 빠지고 있을 때, 군사독재에서 부화한 자칭 문민정부의 권위주의는 자율이라는 탈을 쓰고 너울너울 춤추며 넋 나간 사람들을 모아 견고한 보수의 성으로 회귀한다. 일 막의 중간쯤에서 아류들이 등장하여 영문도 모르며 배운 춤을 무리지어 추고 있다. 마취의 도가니에서 열광하는 중우(어리석은 대중)들이 우레 같은 박수를 치고 흥에 겨운 군무가 더욱 가열되는데 자리를 잃은 이 땅의 힘없는 주인들은 무대 아래서 서성이며 자꾸 무기력 속으로 빠져든다.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소박하면서도 형이상학적인 바로 이 화두 앞에서 말문이 막히는 지성은 우울하다. 사람들은 교육개혁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거부할 수 없는 요청으로서 자명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자명한 것으로 여겨지는 것보다 더 위험한 것은 없다. 교육부가 주도하고 전국의 대학이 앞 다투어 따라감으로써 요원의 불길처럼 번지고 있는 이즈음의 교육개혁과 대학개혁은 곳곳에 아포리아가 잠복하고 있는 기관차가 브레이크가 파열된 채로 질주하고 있는 것과 흡사하다. 일례로, 다양화와 특성화라는 가치를 내걸고 이와는 상반되게 교육부는 재정지원이라는 당근을 슬쩍슬쩍 내 보이면서 획일화로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모든 대학이 학부제와 최소전공인정학점제를 시행했을 때 그것은 곧 획일화이지 결코 다양화도 특성화도 아닌 것이다. 미니스커트가 유행한다고 해서 각자가 가진 체형은 무시하고 모두가 짧은 치마를 경쟁적으로 입고 나서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개혁 신드롬은 위험하다.
그렇다고 해서 개혁을 하지 말자는 것은 아니다. 개혁 그 자체를 싫어하거나 거부할 자는 아무도 없다. 문제는 방향과 방법이다. 개혁의 목표가 추상적으로 도식화된 유토피아가 되어서는 안 된다. 개혁의 실행은 한 두 사람의 등장만으로는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여러 사람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어야 하고, 신뢰할 수 있는 정보가 많이 있어야 한다. 비판적인 목소리가 있을 때 침묵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새로운 해결책은 반대가 있을 때 수정을 통해서 비로소 가능하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상황을 바꿀 수 있는 대안은 갈등과 저항을 거부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고려에 넣고 심각하게 다룰 수 있어야 한다.
개혁의 방법은 민주적으로, 세부 과제는 합리적으로, 그리고 큰 방향은 꿈을 가지고 실천할 때 우리는 비로소 미래와 발전과 희망의 이야기를 써 나갈 수 있는 것이다.
현대적 지도자상은, 그의 신념과 소신에 따라 구성원을 끌고 가는 자가 아니라, 구성원이 말하고 싶은 것을 대신해서 말해줄 수 있는 자이고, 구성원들이 바라고 있는 것을 찾아 이를 앞당겨 해줄 줄을 아는 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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