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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보 사설)민주주의와 선거[경산대신문(1997,12,18 )] / 김주완

김주완 2001. 4. 2. 10:46

       (학보 사설)

<경산대신문 제 210, 211호(1997,12,18.)>

 

민주주의와 선거 / 김주완

 

 

연일 계속되는 환률폭등과 주가폭락의 경제불안 속에 한국인의 삶 전체가 뒤뚱거리고 있다. 안락해야할 국민의 삶이 추락하는 것과 증발하는 것 사이에서 좌표계를 이탈한 채 공포의 바다를 표류하고 있다. 거기에다 한달여 앞으로 다가온 대선정국은 또 얼마나 혼미한지 지금 한국이 앓는 어지름증은 중증이다. 정치도 경제도 없고 선거만이 있다.

 

 선거란 무엇인가? 그것은 현실 민주주의가 만들어낸 최선의 방책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차선도 못될 수가 있다. 투표에 의해 사람을 뽑는 선거는 다수결의 원칙이 전제되어 있으므로 선거에 의해 뽑힌 사람의 행위는 일단 정당성이 부여된다. 그것은 그의 개인적 행위이면서 동시에 그를 뽑은 사람들의 공동행위이다. 그러니까 선택된 자의 행위가 잘못된 결과를 가져왔을 때 그에 대한 책임은 선택한 사람들의 공동책임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중은 늘 책임의 연대성을 망각하고 있다. 잘못 뽑아놓고 후회하는 것이 좋은 예증이 된다. 이것은 선거의 이념이 가진 문제점이 아니라 선거의 속성이 가진 문제점에서 연유한다.

 

선거는 게임이다. 규칙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규칙이 규칙의 기능을 다하지 못하는 게임이다. 승리하면 모든 것을 차지하고 패배하면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절대절명한 전쟁이다. 그러므로 후보자는 당선을 위해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급조된 정치인이 등장하고 자기편으로 지지의 감정을 불러 일으키기 위한 정의적 언어로 분장된 각종의 수사를 동원하여 후보자의 이미지 메이킹에 열을 올린다. 정권교체와 3김청산 혹은 세대교체라는 선거컨셉을 만들어 자당의 대의명분으로 삼고, 흑색선전과 합종연횡 그리고 비방전으로 유권자를 현혹한다. 대중은 후보자에 대한 정보의 홍수 속에서 실질적인 정보의 빈곤은 의식하지 못한 채 보이지 않는 손에 끌려서 간다. 사이사이에 월드컵 프랑스행 티켓을 따내는 국가대표 축구팀의 짜릿한 경기 장면에 흥분하여 환호하는 동안 시대의식의 각성은 더욱더 멀어져만 간다. 이런 와중에 텔레비젼 토론이다 뭐다 하면서 후보자들이 내어놓는 희망찬 공약들에 대중은 신뢰없는 기대로 우선은 마음이 풍요해진다. 공약의 본질특징이나 의의를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공약이란 국민을 향한 공적 약속이다. 약속의 본질은 한쪽에는 의무가, 다른 쪽에는 책임이 생긴다는데 있다. 약속을 불이행하는 경우 의무위반도 잘못이지만 이행을 요구하지 않음도 잘못이다. 지금까지 우리 국민들이 약속의 불이행을 지적하고 이행을 지속적으로 요구한 적이 단 한번이라도 있었던가 ! 이번 대선에서 대중이 적용해야 할 선택의 기준은 후보자의 자질에 대한 객관적 평가이며 그것은 후보자의 경륜과 삶의 행적에서 찾아져야 한다. 현대적 의미에 있어서 진정한 지도자란 자신의 뜻대로 대중을 끌고 가는 자가 아니라 대중이 말하고 싶은 것을 대신하여 말해줄 수 있고 대중이 바라는 바를 대신해서 이루어줄 수 있는 자이다. 우리는 모두 책임있는 선거를 해야만 한다.

 

선거없는 민주주의는 성립될 수 없고 선거만으로 민주주의가 실현될 수 없다는 점이 선거와 민주주의가 가지는 이율배반이다. 그래서 민주주의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최선이 아니라 차선인 것이다.


                    < 경산대신문 사설 >   --경산대신문 제 210, 211호(1997,12,18 火) 2면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