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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아내의 뜨개질[佛光』1987-2월호(통권 제148호)]/김주완

김주완 2001. 1. 1. 20:50

[수필]


<『佛光』1987-2월호(통권 제148호) 24-26쪽>


아내의 뜨개질


김주완(시인)


지난 초겨울의 일이다. 그러니까 11월 중순쯤일 것이다. 아이들 목도리를 짠다고 아내가 뜨개질을 시작했다. 낮에는 학교에 나가 코흘리개 남의 아이들과 어울려 씨름을 하고 집에 돌아오면 아침저녁으로 틈틈이 뜨개질을 해댔다. 낮은 자꾸 짧아졌고 장기 일기예보에서는 어느 해보다도 추운 겨울이 될 것이라고 공포감을 가중시키고 있었다.


그때, 지금까지도 일부 사정은 마찬가지이지만 나와 아내는 참 어렵고 힘든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왜냐하면 내가 전직을 한답시고 11년간의 직장을 그만두고 새로운 일자리를 이리저리 알아보며 빈둥거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불확실하고 초조하고 불안한 날들의 연속이었다. 명분과 자존심이 생계를 해결해 주는 것은 아니었다. 실로 그것은 실리와는 상반되기만 하는 거추장스러운 것이었다. 물론 생존의 이러한 단순한 이치를 미리 몰랐던 것은 아니지만 인격과 인간적 자기존엄의 유지와 내면적 가치추구에의 열망은 상사의 간곡한 만류를 뿌리치고 끝내 사직의 결단을 실천하도록 사태를 끌고 가 버렸던 것이다. 일단은 이사부터 준비해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손수 다듬어 살아온 집부터 처분해야 했다. 시골의 면소재지에 있는 반 양옥 건물의 매매가 결코 수월하지만은 않았다. 신학기가 되면 아내도 도회지 가까이의 학교로 이동하여야 했고, 아이들 전학은 하루 이틀 만에 처리되는 게 아니어서 서둘러 배정을 받아 먼저 옮겨가게 해야 했다. 이사 들 도회의 집도 둘러보아야 했다. 모든 것이 어렵고 불안정한 날들일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가 저희끼리 먼저 나가있는 아이들은 부모 곁을 떠난 생활에 적응을 못해 안절부절 이었고, 시집 발간이다 뭐다 하는 일까지 겹쳐 동분서주하고 있었으니 이 모든 일을 감내해야 하는 아내는 기실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그래서 뜨개질을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몇 가지 색깔의 털실을 섞어서, 아이들 목둘레만큼한 길이의 양 끝에 다이아몬드 모양의 리본이 달린 목도리를 아내는 부지런히 떴다. 몇 주일 동안 매일처럼 자정이 넘는 시간까지 한 코 한 코 정성들여 짜서 딸아이 셋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었다. 아내의 모습은 처해진 현실을 모두 수용하며 안정되는 어머니의 모습 바로 그것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허리와 어깨의 통증을 앓고 있는 아내가 은근히 염려스러웠지만 나는 끝내 그 일을 중지시키지 못하고 그저 바라보고만 있을 따름이었다. 아내의 슬기와 모정과 극기의 담담한 실천에 아연 감복만 하고 있었다. 나는 그때 해결해야 할 산적한 일들에 갈팡질팡하며 그 어느 일 하나 거뜬히 처리하지 못한 채 계속되는 극도의 긴장으로 심한 불면증을 앓고 있는 못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아내가 그리 의젓하고 든든해 보일 때가 또 있었을까 싶기만 했다.


오래 전에 본 외국영화에서는 히피족의 젊은 남자가 뜨개질을 하고 있었다. 허술한 옷차림과 퀭한 눈을 가진 그는 해골처럼 마르고 피부색이 하얀 손으로 재킷인지 조끼인지 아무튼 그러한 것을 차안에서건 식당에서건 너절하게 짜고 있었다. 남자와 여자가 할 일이 뚜렷이 구분되어 있는 동양적 사고방식으로 길들여진 나의 의식으로는 그때 그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장면이었고 행동이었다. 그저 반쯤 정신이상이 된 외국인의 행동거지로 무심히 보아 넘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아내의 뜨개질을 옆에서 보고 있는 동안 나는 그 젊은 서양남자가 이해되어 갔고, 나도 그런 일이라도 해봤으면 하는 생각까지 들게 되었다. 단순한 작업의 규칙적 반복에 끌려들어 열중하는 가운데서 얻는 안락, 불안과 초조와 강박과 갈등에 시달리는 의식이 온전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그 방법뿐이지 않는가. 술에 만취되어 보아도, 수면제를 먹고 잠자리에 들어도 결코 떠나지 않는 괴로움일지라도 저 단순한 열중 속에선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거기다가 털실의 따뜻하고 부드러운 촉감이 주는 안정과 조금씩 이어져 마침내 하나의 완성품을 만들어 내는 성취감마저 부수됨에야 이는 곧 자기구원의 방편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지 않을까.


아내의 따스한 정성이 딸아이 셋의 목을 감싸고, 아늑하고 든든한 뒷바라지가 집안에 있는 한 이 겨울 추위와 나의 어려움도 어쩌면 쉽게 풀려지리란 믿음 같은 게 그래서 생겨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