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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손을 보면서 사는 재미/김주완[매일신문 2002. 8. 24.]

김주완 2001. 1. 8. 11:02

 

외손을 보면서 사는 재미


김주완(시인/경산대 문화학부 교수)


주말이면 딸아이 내외가 외손자를 데리고 온다. 같은 대구에 살고 있어 주중에도 오지만 주말에는 거르는 일이 없다. 우리 나이로 네 살인 큰놈은 ‘하림’이고 두 살인 둘째 놈은 ‘하빈’이다. 현관에 들어서면 두 놈이 다투어 내 목을 끌어안고 달라붙는다. 하림이가 부르는 ‘할배~’라는 소리가 그리 정겨울 수가 없고 아직 말을 익히지 못한 하빈이가 강아지처럼 낑낑대는 소리가 그렇게 살가울 수가 없다. 토요일은 이놈들을 기다리는 재미에 산다. 아니 토요일을 기다리는 재미에 일주일을 산다.

 

결혼을 일찍 해서 친구들보다 5~6년 빠른 나는 딸아이만 셋을 두었다. 위로 둘은 출가를 시켰으며 큰 아이는 중학교 영어교사이고 둘째 아이는 고등학교 수학교사이다. 큰 아이는 아들만 둘을 낳았고 둘째 아이는 딸과 아들을 각각 하나씩 낳았다. 막내 딸아이는 아직 미혼으로 고시생이다. 지금 시험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평소에는 초등학교 교사인 아내와 둘이서만 살고 있다. 아이들이 아니라면 우리의 오십대는 무료하고 적적하며 따분했을 것이다.

 

둘째 딸아이는 시부모와 함께 전원생활을 하고 있어서 친정에 자주 오지 못한다. 그러나 야생마처럼 아이들을 키우고 있다. 한번씩 볼라치면 큰 외손녀인 ‘예지’는 딸아이이면서도 활발하고 거침이 없으며 그 밑의 외손자인 ‘예서’는 행동이 저돌적이다. 두 아이 모두 겁이 없고 적극적으로 몸을 던지면서 논다.

 

이에 비해 아파트 생활을 하는 큰 딸아이의 아이들은 왠지 약해 보인다. 특히 맏이인 하림이가 그러하다. 이 놈은 제 아비를 닮아 용모가 반듯하다. 크면 미남형의 얼굴이 될 것 같다. 몸도 여리고 밥도 많이 먹지 않는다. 잘못 키우면 마마보이가 될 염려도 있어 보인다. 그러나 하빈이는 전혀 딴판이다. 좋게 말해서 남자아이답게 생겼고 솔직하게 말하면 좀 못 생긴 얼굴이다. 눈썹이 꺾여 올라가고 우락부락하여 사람들은 외조부인 나를 닮았다고 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살색이 뽀얗다는 것이다. 그러나 내게는 이놈이 가장 귀엽고 이쁘다. 다른 사람들도 모두 이놈의 귀여움에는 경탄을 금치 못한다.

 

하빈이가 더 이쁜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이놈은 생후 8일만에 신생아에게는 매우 위험한 바이러스성 장염에 걸려 종합병원 중환자실에 10여 일 간 입원한 적이 있다. 그 때 제 어미는 산후조리원에서 눈물만 흘리고 있었고 내가 뛰어다니면서 매일 면회를 하였고 소아과장을 만나 면담을 하면서 예후에 가슴 조렸다. 그 때를 생각하면 이 놈이 하는 모든 짓이 그저 기특하고 지금의 건강한 모습이 무조건 대견스럽다.

 

하림이가 붉은 악마의 응원구호를 외치면 하빈이도 따라 한다. 대~한민국을 발음하지 못해 ‘대~’라는 소리만 내면서도 하빈이는 오동통한 두 팔을 번쩍 쳐들고 V자를 만들뿐 아니라 손뼉으로는 ‘짜작 짜작 짝’ 다섯 박자를 곧잘 쳐댄다. 매스컴의 위력을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하빈이는 눈만 뜨면 잠들 때까지 먹을 것을 입에서 떼지 않는다. 먹을 것을 달라고 할 때는 ‘무~ㄹ’이라고 한다. 놈에게는 물도 물이고 사탕도 물이고 밥도 물이다. 기분 좋게 잠들 때는 내 방으로 와서 내 팔을 베고 스르르 잠이 든다. 산책이라도 나가면 제 아비 어미 손도 밀어내고 내 손만 잡고 뒤뚱거리며 걷는다. 식탁에 앉으면 앙증맞은 두 손을 마주잡고 기도하는 시늉을 하고, 기저귀를 갈아달라고 할 때는 스스로 제 바지를 잡아당긴다. 이놈은 억지가 이만저만이 아니고 투지도 대단하다. 제 형의 장난감을 훌쩍 빼앗아 버리고, 트집이라도 나면 방바닥이나 벽에 머리를 쾅쾅 부딪치면서 우렁차게 운다.

 

하빈이를 보면 옛날의 내 모습이 떠오른다. 검은 띠로 묶은 태권도복을 어깨에 걸치고 어슬렁거리던 고등학교 시절의 내 모습이 하빈이에게 오버랩 되곤 한다. 이 놈들이 다섯 살만 되면 목검을 깎아 손에 들리고 내가 직접 검도를 가르칠 작정이다. 깜찍한 도복도 입히고 흰 띠부터 매여서 말이다.

 

나는 부자도 아니고 권력자도 아니다. 불후의 명시를 쓰는 시인도 아니고 저명한 석학도 아니다. 그러나 내게는 사는 재미가 있다. 희망과 미래라는 이름의 외손들을 보는 기쁨이 있다.


[매일신문] 2002. 8. 24. 土. 5면 <주말에세이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