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머물지도 않으면서 남기고 간다
김주완
1
머물지도 않으면서 남기고 간다
지워도 지워지지 않는
그대 지나간 자리의 여진
남모르게 숨은 떨림이
내 정신의 가지 끝에 자욱히
사라지지 않고 여지껏 있다
나는
지금
이동할 수 없어 서러운
붙박이 묵은 나무이다
그대
돌아가는 길 멀리
황금 네거리에서 중동교 쪽으로
직진 신호를 기다리며
내 속에 남아있는 그대를 밀어낸다
그대 긴 목
긴 두 팔이 만들어내던
안개꽃 여린 기억을 닦아낸다
그러나 자국들 너무 깊다
--나는 이제
모 방속국 기상 캐스트 L양이 나오면
채널을 돌려 버린다
나의 시간 정지하여 있고
그대의 삶 살아 있으므로서이다
<1997.10.07.>
2
1997년 7월에서 9월 사이
잠시이면서도 잠시가 아닌 동안
영혼을 짜낸
정신의 피를 쏟아부었다
그러나 너는
고이지 않는 항아리 너머로
돌아서 갔다
너의 발길을 적실 힘도 없이
흔적없이 잦아드는
내 푸른 피를 보며
진리 너머에 무엇이 있을까를
나는 하염없이 생각하고 있었다
너의 일과 나의 일
너의 문제와 나의 문제에 대한
결국은 내 탓인
너의 탓에서 연유하는 우리의
오늘을 망연히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너를
그냥 그대로 둘 것이다
너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얼음같이 차가운 진리를
단지 보기만 할 것이다
기억의 지층 깊이 이쁜
너의 반쪽을 묻을 것이다
언제까지건 꺼내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내가 정한 내일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 1997.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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