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시]
돌아보아야 보이네
― 『哲學硏究』 지령 100집에 부쳐 ―
김 주 완(한국동서철학회장)
앞만 보고 가는 자는 보지 못하네
잠시 걸음 멈추고 숨결 돌리며
뒤돌아보아야 보이는 것이네
얼음처럼 투명하게 빛나는
정신의 결정結晶으로 남겨진 발자국들이
길게 길게 한 줄로 이어져
거기, 열정의 역사를 증거하고 있는 것이
광야를 가로지르는 이어달리기였네
잠시 노역勞役을 넘겨받아
등짐 무거이 지고 달리다가
지쳐 힘이 빠지면
누군가 다음 사람이 또 다시 넘겨받아
다시 달리고 다시 넘겨주고
그렇게 이어서 달려온 것이네
멀고 먼 길이었네
땅의 길도 아니고
하늘의 길도 아니라
다만 그 사이로 살아있는
정신의 길이었네
깨어있는 자의 충혈된 정신
정신의 산고로 낳은 정신
정신을 정신으로 전달하는 정신의
아득하게 외로운 길이었네
오늘, 길 위의
나무가 저리 우람한 것은
바람의 덕이었네, 비의 공이었네
쓰러지지 않을 만큼의 바람
마르지도
썩지도 않을 만큼의 비
그들이 나무를 키우고 잎을 달았네
그러나 그들은 공적을 자랑하지 않네
먼저 달린 사람들은 사라지고
이제 이름만 남아있네
사라지지 않는 이름들이
거기 그대로 남아있네
신화 같은 전설로
떠남으로써 영원히 남아있는 것이네
다음에 달릴 사람들은
아직 무대 뒤에 있네, 기다리고 있네
때가 오기를, 순서가 되기를
다만 담담하게 기다리고 있네
영원 속의 한 지점을
짊어지기 위하여 기다리고 있네
행군이었네
발에 물집 돋는 행군이었네
산맥을 따라 달리거나
대양을 가로질러 건너는
아무도 보아주지 않아
더욱 소중한 행군이었네
길이기에 가는 것이고
가고 있기에 길이 되는 것이었네
길 위에 사람들이 있고
스러지지 않는
그들의 정신이 있네
설령 지금은
먼지 속에 갇혀 있다 해도
산정의 얼음바위처럼
광채를 그 속에 감추고 있네
영원으로 닿으면서 있네
<2006.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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