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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시] 백승균 박사 고희 / 김주완 [2006.06.17.]

김주완 2006. 6. 17. 17:54

[祝詩]


                표표히 나부끼는 은발 쓸어 올리며

                                               ―雲梯 白承均 박사 古稀에 바치는 글월―


 

                                          

                                                                                                                                                    김 주 완


                                       1.

 

표표히 나부끼는 은발 쓸어 올리며

맑디맑은 미소로 사람들을 싸안는

그윽한 선생님의 옥안(玉顔)을 뵈면서,


사람들이 당신을 가리켜

우리 시대의 마지막 스승이라고 일컫는 것은

혼돈과 미혹, 배리와 전도, 부정과 붕괴,

분열과 이전투구 그리고 일신의 안일과 이기만 쫓는

야기요단(惹起鬧端)의 소용돌이 속에서

당신만이 오직 홀로 높이 솟아

영원한 사표(師表)로 남을

삶의 삼고봉(三高峰)을 우뚝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운제 백승균 선생님!

‘성품은 고결(高潔)하고

인격은 고매(高邁)하며

학문은 고고(高高)하다’고,

선생님이 쌓으신 세 가지 높은 덕목을

사람들은 그렇게 부르고 있습니다.


운제 선생님!

당신의 성품과 인격과 학문이 서로 다르지 않듯이

고매와 고고는

고결의 원천에서 샘솟은 것임을

우리는 선생님을 보면서 배웁니다.


                                       2.

 

고결한 자는 타협하지 않습니다.

순일(純一)과 절대적 전일(全一)

이것만이 그에게 있어 의미의 전부인지라

오직 이것을 지키기 위하여

어떠한 편협과 저돌, 가치훼손도 사양하지 아니하며

아무리 큰 책임이나 죄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3.

 

고결한 자는

위대한 것에 몸 바칩니다.

위대한 것에 헌신하는 고결한 자의 노력은

자기를 초월하고 현존사회를 초월합니다.

고결한 자는

위험에 노출되어 끊임없이 상처입지만

내면의 정신은 조금도 손상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기사(騎士)의 강한 도덕성으로

사람들을 함께 끌고 가 저 높은 곳으로 데려갑니다.


                                       4.

 

고결한 자는 잔 재간을 싫어합니다.

목적만이 아니라 수단도 선택합니다.

그에게는 자기의식으로서의 자긍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고결한 자의 자존심은 다른 사람의 명예도 똑같이 존중하며

그의 긍지는 겸손으로 나타납니다.

그의 눈길은 언제나 더 높은 위를 바라보고 있기에

우러러 볼 수 있는 것 속에서만

그는 늘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결한 자는 높은 것을 끌어 내리려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곧 자기 자신을 낮추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5.

 

저와 같이, 선생님의 눈길은 언제나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있으나

두 발 굳건히

따스한 이 땅 딛고 서 계시기에,

사회와 역사와 인간을 아우러시고

저들에게 다가오는 희망의 새벽과

무한한 가능성에 눈 뜨도록 이끄시는

<구름 사다리>(雲梯)의 소명(召命)을 다하고 계십니다.


남들은 퇴임하면 책을 덮는데

선생님은 여전히 펴 놓으신 채로

때마다 역저를 세상으로 내 보냅니다,

퇴임 후의 만년(晩年)

촌음(寸陰)도 쪼개어 쓰시면서,


선생님의 연구소 [운제 아카데미]에서

혹은 강단의 치열한 담론에서

현실을 이상으로 끌어 올리고

이상을 현실 속에 실현시키는

학문의 외길,

진리와 자유를 찾아 오롯이 홀로 가시는

선생님은 바로,

우리 시대의 마지막 구도자(求道者)이며

철학자 중의 철학자이십니다.


“한국에 철학자가 있느냐?”고 누가 물으면

“한국에 참다운 스승이 있느냐?”고 누가 물으면

“운제 백승균 선생님이 계시다”고

우리는 자신 있게 말할 것입니다.


                                       6.

 

운제 선생님!

사람들은 ‘스승만한 제자가 없다’고들 합니다.

너무 크신 선생님을 누가 따라가겠습니까.

그러나 오늘 우리가 다만 할 수 있는 일,

흉내라도 자주 내다보면

어느새 조금씩은 닮아갈 수 있겠지요.


운제 선생님!

사모님과 함께 날마다 노익장 하셔서

앞으로 희수(喜壽)도 맞으시고 미수(米壽)도 보내시며

아무쪼록 백수(白壽)를 살으셔서

증손자 고손자도 보시고,

깜냥도 안 되는 제자들과 후학들이

감히 선생님을 흉내 내는

어쭙잖은 모습들도 밉다 말고 보십시오.


선생님의 서재, 장중한 오디오로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오래오래 즐기시면서,

만년설 같던 순백의 철학이

시름시름 고사(枯死)하고 있는 이 시대에

영원한 철학의 성배(聖杯)를 남기시어

뒤따르는 자들을

오래오래 이끌어 주옵소서.


―2006년 6월 17일 토요일에 말제자(末弟子) 김주완이 삼가 지어서 바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