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특별기획②_(프로시딩 6~15쪽)
허유 하기락 선생의 영면과 영생
김주완(시인)
□ 허유 하기락 선생의 영면
한국 제1세대 철학자이자 아나키스트인 허유 하기락 선생은 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1997년 2월 3일(월) 오전 10시, 대구시 수성구 범어동 자택에서 86세를 일기로 영면하셨다. 아나키스트 기관지 《평협》의 배포를 위해 집을 나서다 얼음 언 시멘트 바닥의 마당에 쓰러져 뇌진탕을 일으켰고 곧바로 대구 경북대학교병원 응급실로 이송되었으나 이내 숨을 거두셨다. 분향소는 경북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되었다.
당일 오후 3시 분향소에서 대한철학회와 유족 간의 협의를 거쳐 대한철학회장으로 장례를 거행하기로 최종적으로 결정하였다. 한국 최초의 학회장이었다. 준비 절차를 거쳐서 오후 8시 30분에 장례위원회가 구성되었다. 위원장은 김위성(부산대)이 맡고 고문으로 한명수(경북대 총장, 계명대 이사장 역임), 이종후(영남대 명예교수), 구상(시인), 설창수(시인) 최종두(기업가)가 위촉되었으며, 여러 명의 장례위원과 집행위원이 위촉되었다. 장례위원으로 들어간 나는 실무 총괄을 맡아 경북대학교 철학과 사무실과 뉴영남호텔 객실에 임시 사무실을 열고 이남원(부산대), 문성학(경북대), 이윤복(경상대), 장윤수(대구교대), 정낙림(경북대) 등 여러 교수들의 도움을 받아 부음 발신과 연락, 언론・방송용 보도자료 정리 및 배포, 영결식 준비 업무 등을 분담하여 진행하였다.
1997년 2월 6일(목) 오전 8시, 경북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4일장으로 치러지는 영결식이 거행되었다. 사회는 김도종(뒤에 원광대학교 총장 역임)이 맡고, 고인의 약력 소개는 이강조(경북대), 영결사는 김위성(부산대), 조사는 조욱연(대구가톨릭대)이 했고 나는 자작 조시를 낭독하였다. 조시를 쓰면서 나는 이미 허유 하기락 선생은 영면하셨으나 영생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조시]
가셔도 가시지 않았으니
― 허유 하기락 선생님 영전에
김주완
Ⅰ.
선생님
허유 선생님!
때아닌 계절, 음력 섣달그믐에
저리도 자욱한 국화 숲에 누워서
가시나이까,
정녕 가시나이까.
지리산 백무동 골짜기를 밟아 올라
저물녘에 벽소령을 옆으로 끼고
표표한 발걸음으로 홀로 이르시던
세석평전을 거기 그대로 두고
저만큼 천왕봉을 거기 그대로 두고
노동자 농민이 자주인 되는 날이
아직도 아득히 멀기만 한데
힘의 무게에 눌려 질식하는
저 가련한 산업 민주화는 어찌하라고
“인간의 얼굴을 가진 사회주의”와 “사회의 얼굴을 가진 자본주의”가
서로 조화하여 21세기로 향하는
인류 전체의 연대와 화평의 지침은 어찌하시고
가시나이까
선생님,
그리도 성큼성큼
정녕 가시나이까
허유 선생님!
Ⅱ.
선생님은 가셔도
그러나 가시지 않았으니,
대학의 도서관마다, 거리의 서점마다
연구실의 서가마다
삶의 무게를 지탱하는 지주로 남으시고
후학들의 가슴에 심어진 말씀으로 있으시니
돌아보면 사방에 선생님이 계십니다.
세우신 학문과 닦으신 실천이
높고 맑아 고결하셨으며
고결하였으므로 타협을 싫어하신 성품은
때로는 외로울 수밖에 없었고
더러는 주변에 담을 쌓기도 하였지만
눈앞의 것보다 훨씬 먼 데까지 내다보는
지혜자의 순수한 모습은
마침내 대중을 끌어당겨
사상과 존재가 일치하는 진리보다
말과 사상이 일치하는 진실이
그보다, 말과 행위가 일치하는 성실이
진정한 도덕적 가치임을 깨치게 하여
제각기 최선의 자기를 건설케 하였습니다.
없음으로서의 있음
항시 비워둠으로써 가득함,
허(虛)의 현실 저편에 빛나는 유(有)의 이상을
바라보며 노력하는 것이 곧 인간의 천분임을
두 자 아호 허유(虛有)로 쓰시면서 가르치신
둔각을 깨트려 감싸안는 예각적 교훈이
저희에 대하여 있는 한
선생님은 가셔도
영원히 가시지 않았나이다.
Ⅲ.
이제 선생님 가시는 곳
경남 거창군 마리면 고학리 늘밭,
거기는
당신의 눈 속에 흐리고 흐리던
역사가 빨아낸 자유의 빛깔도 돌아오고
앓는 공화국의 우울한 침묵도 걷혀지며
생전에 그리도 아끼고 사랑하시던
지리산 힘찬 준령
형제봉, 칠선봉, 촛대봉, 연하봉, 제석봉을
아침저녁으로 마주하여 대하시고
먼저 떠난 문인, 철학자 그리고 아나키스트
맑고 맑은 지인들과 만나시어
시원하게 넘쳐나는 담소를 종일토록 나누실 곳이오니
여든여섯 해의 풍상과
칡넝쿨처럼 질긴 이 땅의 속박은 벗으시고
늘밭에서 고이 영면하소서.
맑은 새벽하늘
겨레의 철학과 자유를 지키는 별로 뜨셔서
남은 저희 오래 끌어 주소서.
1997. 2. 6.
□ 학덕비 건립
장례가 끝난 직후부터 대한철학회를 중심으로 허유 하기락 선생의 학문과 아나키즘 운동을 후세에 전할 사업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작고 다음해인 1997년 7월 25일, <철학자 허유 하기락 선생 학덕비 건립 추진위원회>가 발기되었다. 위원장은 채수한(영남대), 간사장은 김주완(대구한의대), 회계 간사는 이윤복(경상대)이 맡아 전국적인 모금 운동에 들어가면서 발기위원회는 곧 건립위원회로 승격 조직화 되었는데, 고문에는 구상(시인), 김춘수(시인), 이명현(전 교육부장관)이 위촉되고 자문위원, 지도위원, 감사, 기획위원, 위원, 간사 등의 직위에 전국적인 지명도를 가진 수많은 학자, 예술인, 사회운동가들이 이름을 올렸다. 간사장인 나와 함께 일할 간사로는 이남원(부산대), 문성학(경북대), 이윤복(경상대), 김용섭(대구한의대), 문장수(경북대), 장윤수(대구교대), 유철(경북대), 배상식(현 대구교대 총장) 교수 등이다.
학덕비 건립 부지 선정 문제로 상당한 시일이 소요되었다. 발기 후 5년 만인 2002년 6월 8일(토) 12:00, 허유 하기락 선생의 고향인 경남 함양군 안의면 안의공원에 학덕비를 건립하게 되었다. 경비는 전국에서 답지한 128명의 출연금 14,440,000원으로 충당하였다. 비문은 김주완이 글을 짓고 채수한이 붓글씨를 썼다.
[비문 전면]
虛有 河岐洛 博士 學德碑
한 손에 실존적 자유의 깃발을,
다른 손에 인간적 해방의 깃발을
높이 쳐들고,
일생을 통한 뜨거운 열정으로
이론과 실천을 하나로 어울러
이 나라 현대철학의 제1세대 학자로서
최고봉을 이루셨던 분,
이곳 안의 출신의
허유 하기락 선생이시다.
2002년 6월 8일
虛有河岐洛博士學德碑建立委員會 세움
金柱完 글 짓고 曉頂 蔡洙翰 碑銘 쓰다
[비문 후면]
허유 하기락虛有 河岐洛(1912~1997)
선생은 경술국치 2년 후인 1912년 1월 26일 경상남도의 고읍古邑 이곳 안의에서 나라 잃은 백성의 아들로 태어나셨다. 소싯적부터 명민하고 기개가 장한 선생은 1929년 광주학생사건에 연루되어 경성제2고등보통학교 졸업반에서 퇴학당한 후 경성중앙고보에 편입학하여 1933년에 가까스로 졸업하고 일본으로 밀항하여 동경상지대학 예과를 수료한 뒤 와세다대학 문학부 재학 중인 1939년 12월 항일 학생운동으로 일경에 검속되어 옥고를 치르셨다. 1940년 와세다대학 졸업 시에는 하이데거를 전공하였다가 뒤에 N. 하르트만으로 연구 방향을 바꾸셨다. 1945년 민족의 염원이었던 조국 해방을 맞아 한국농민조합을 창설하고 조합장에 피선되어 한국농민운동의 효시가 되셨으며 1946년 부산자유민보를 창간 주필에 취임하고 같은 해 4월 20일에서 23일까지 이곳 안의에서 전국아나키스트대회를 개최하여 권력의 지방분산과 자주적 자유연합을 크게 주창하셨다.
일제에 의해 말살된 민족주체성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철학의 공고화가 절실하다고 생각하신 선생은 1947년 대구대학(현재의 영남대학교) 철학과 주임교수로 취임하여 학자로서의 일생을 출발하셨으며 이후 경북대학교 철학과 주임교수 경북대학교 문리과대학 학장 동아대학교 초빙교수 계명대학교 대우교수 등을 1980년대까지 역임하셨고 그 사이 1951년에는 중등교육의 확대를 위하여 안의고등학교를 설립하셨다. 1961년에는 대구시 대학교육회 회장을 역임하신 바 있으며 1963년에는 한강 이남에서 최초의 철학 전문 학술단체인 한국칸트학회(현재의 사단법인 대한철학회)를 창립하고 초대 회장을 맡아 철학자들의 항구적인 연구 활동무대를 마련하셨다. 퇴직 후에도 평생에 걸쳐 철학 연구에 매진하신 선생은 25권의 저서와 19권의 번역서 29편의 논문을 남김으로써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연구 업적을 기록하셨으며 선생의 문하에서 수학한 철학자와 교수 교원들이 부지기수이다.
만년인 1987년 경북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고문과 전국아나키스트 대회장을 역임하시고 1988년 세계아나키스트대회를 서울에 유치하여「세계평화를 위한 국제 세미나」를 개최하시며 1989년 샌프란시스코 아나키스트대회 기조연설을 하시는가 하면 1990년 구 소비에트 과학아카데미 공식 초청 방소 강연을 하시는 등 유년기부터 키워온 자유와 해방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셨다.
1990년 이후에는 한편으로 후학양성과 저술 활동에 주력하여 대작『조선철학사』를 상재하시고 다른 편으로 국제평화협회 이사장을 맡아 기관지 [평협]의 편집인으로서 노동신문을 발행하여 근로자 대중에게 배포하셨다. 그러나 선생은 1997년 2월 3일 기관지 [평협]의 배포를 위해 집을 나서시다 마당에 쓰러져 이승을 떠나시니 향년이 86세이었으며 그 장례는 대한철학회장으로 봉행하여 지리산을 건너다보는 곳 경상남도 거창군 마리면 늘밭에 안장하였다.
실로 선생은 세우신 학문과 닦으신 실천이 높고 맑아 고결하셨으며 곤궁한 자 허약한 자의 편에서 매사를 생각하셨고 산과 자연을 좋아하시어 순정純正 순일純一 순전純全한 기품으로 청빈한 한 생을 사시면서 한국 현대철학의 기반을 굳건히 다지셨으며 실존적 자유와 인간적 해방의 실현을 위한 구도의 길을 걸으셨으니 그 뜨거운 학구 정신과 강인한 실천 의지를 추모하는 후학과 후진들이 이 유서 깊은 땅 안의공원에 돌 하나를 세워서 그 빛나는 삶을 길이 전하는 바이다.
□ 계승과 현창
영원한 자유인 허유 하기락 선생은 가시고 그가 그처럼 간구(干求)했던 <인간의 해방>과 <실존의 자유>는 이제 후세대의 과제로 남겨졌다. 하기락 선생이 양손에 잡고 있었던 철학과 아나키즘이 후세대의 손으로 넘어온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철학은 물질만능주의와 과학의 발전 논리에 밀려 사양화되고 있으며, 하기락에 이어 니콜라이 하르트만을 연구하는 학문 후속 연구 세대 또한 그리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나 아나키즘은 사정이 다르다. 석학 김성국(1947~ ) 교수가 하기락의 아나키즘을 굳건히 계승하고 있다. 김성국 교수는 세계적인 사회학자로서 사회학, 정치학, 철학, 문학을 폭넓게 섭렵하고 수용하면서 잡종 사회를 화두로 하여 <아나키즘과 자유주의 문명 전환론>이라는 그만의 독창적 사회사상을 건설하였다. 또한 이것을 동양적인 하나 사상으로 수렴시키는 작업을 진행하여 <하나 논리>라는 이론을 정립하였다.
2023년 5월 8일, 김성국 교수는 <허유 하기락 선생 기념사업회>를 발족하였고 그 회장으로 추대되어서 하기락 선생의 자주인 사상 부흥과 현창을 이끌고 있다. 하기락 선생의 철학은 깊은 동면에 들어간 것으로 보이지만, 그의 아나키즘은 김성국 교수에 의하여 이제 막 새봄을 열고 성하(盛夏)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이보다 앞선 2022년 11월 5일에는 그동안 경북대학교 철학과에서 보관하던 하기락 선생의 유품이 낙동강문학관에 기탁되었다. 대한철학회 백승균 이사장과 낙동강문학관 박찬선 관장이 협약식을 가지고 유품을 전달함으로써 이곳 낙동강문학관에 상설 전시하게 되었다.
낙동강문학관은 허유 하기락 선생 유품 상설 전시 기념으로 2023년 5월 21일, 허유 하기락 선생 기념사업회 김성국 회장을 초청하여 특강(“시적 혹은 사회학적 상상력으로서 아나키즘 : 하나의 마음세계)을 실시한 후, 김성국 저 『한국의 아나키스트 - 자유와 해방의 전사』를 청중들에게 증정하는 저자 사인회를 열었다. 이날 대한철학회와 한국아나키즘학회의 많은 인사들이 낙동강문학관을 감사 방문하여 김성국 교수의 강의를 감명 깊게 들었다. 이 자리에서 대한철학회 임종진 회장은 박찬선 관장을 대한철학회 종신 고문으로 추대하고 추대장을 전달하였다.
2023년 11월 11일, 대한철학회(회장 장윤수) 창립 60주년 기념학술대회 제2일차 대회에서는 김성국 교수가 기조 강연(“하나 논리 : 허유 하기락 아니키즘의 승계와 발전)을 하였고 제1세션으로 아나키즘 세션을 열어 2명(경북대 조영준, 경상국립대 김동일)의 연구발표와 2명의 논평(부산대 조창오, 경북대 이병탁) 및 종합토론(사회: 대구대 이재정)이 있었다.
허유 하기락 선생 기념사업회의 첫 학술대회는 2024년 4월 6일 낙동강문학관에서 <문학과 아나키즘>이라는 주제로 열렸다. 조광수 교수, 김창덕 회장, 신항식 회장, 정낙림 교수 등 4명의 연구발표와 종합 토론이 있었다. 원근 각지의 아나키스트와 대한철학회 임원진이 대거 참석하였다.
2024년 8월 15일 대한민국 광복절 기념식에서는 하기락 선생이 국가유공자로 선정되어 대통령으로부터 증서와 훈장을 받았다.
2024년 11월 9일, 기념사업회 2차 학술대회가 대한철학회와 한국아나키즘학회 공동주최로 “국가, 권력, 아나키즘”이라는 대주제로 경북대학교 인문한국진흥관에서 개최되었다. “개인주의 아나키스트 슈티르너(Max Stiner)와 노직(Robert Nozick) : 국가의 개인화와 동양 사상적 맥락”이라는 제목으로 김성국 회장의 기조 강연이 있었고, 이어서 진태원(성공회대), 김명섭(단국대), 이행남(서울대), 조세현(부경대), 김항(연세대) 교수의 연구발표와 한상원(충북대), 강정훈(경상국립대), 나종석(연세대), 이일래(부산대), 이지선(서울여대)의 논평이 있고 난 뒤, 정대훈(부산대) 교수의 사회로 종합토론이 있었다.
하기락 선생은 가셨지만 이제 그의 아나키즘은 김성국 회장이 이끄는 기념사업회에 의하여 그 정신이 면면히 계승되고 있다. 그의 유품은 낙동강문학관에 남아 현대 한국 지성계의 큰 별로서 영롱히 반짝이게 되었다. 전적으로 기념사업회를 발족하고 이끌어 가는 김성국 교수의 노고 덕분이며, 유품을 수탁하고 전시 공간을 확보해 준 낙동강문학관 박찬선 관장의 통섭적ㆍ진취적 안목과 결단의 덕분이다. 원로 시인이자 한국철학을 전공한 철학자인 박찬선은 이번 일로서 한국의 문학관 운영의 새로운 지평을 개시(開示)했다.
나는 박찬선 관장과 아나키스트 김성국 교수를 주제로 하여 연전에 다음과 같은 시를 썼다.
박찬선 선생
김주완
회상나루에서 물을 다스리고 있었다
바람의 길목을 따라
당산에서는 청룡의 울음소리가 났다
남으로 가는 길은 물에서 열리고
천天, 지地, 인人이
퇴강리에서 한 몸으로 합쳐져
문리가 도도히 흐르는 갱다불길 100은
문학을 넘어, 역사와 철학을 넘어
성스러움이 흐르는
낙동강문학의 우주적 성지聖地를 이루었다
대의大義에는 거침이 없으니
쓰는 대로 시가 되고
생각하는 대로 설산의 정상이 되는
눈빛 형형한 시인이 역사役事를 했다
높은 고을 상주尙州를 지키며
동으로 흐르는 물가에서
은빛 도포를 입은 채로 좌정하자
높이 떠돌던 창공의 오색구름이
굽이굽이 낙동강 물줄기로 내려와 휘장을 쳤다
숨이 차면 물길은 돌아 나가지만
숨찰 줄 모르는 시선詩仙은 줄기차게
붉은 남방으로 먼 길을 내고 있었다
길을 내는 일은 우주를 여는 일
그가 옳았다
아나키스트 김성국 교수
김주완
살아있는 것은 모두가 잡종*이었다
잡종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다
저쪽과 이쪽을 모두 친구로 삼고 싶어
너도 자유, 나도 자유였던 처음
떠나온 곳을 돌아보는 사람이 있었다
주어진 것이 빈손뿐이던 출항은 설레었다
살아 있음은 경건하고
개인은 자연에서 왔으므로 자유이며 하늘이라
사람을 사랑하여 사름하는 사람이 있었다
바닷가에서 바다를 보며 바다가 되고 싶었던 사람
해적처럼 붉고 더운 피를 가진 자유의 수행자가 있었다
35세 연상의 허유** 선생이 대단하다, 존경한다 했던
높고 먼 시선을 가진 오롯이 키 큰 사람 하나
부름에 응답하는 푸른 사람은
선혈 같은 동백꽃이 되어 밤새도록 피었다
오는 대로 받아들이는 해방의 바다를 꿈꾸며
바람을 가르며 잘라 온 한 떨기 수평선을
입춘 무렵이면 펼치고 또 펼쳤다
마침내 소리가 되어 먼 들판을 가로질러
눈물겹게 다가오는 것은 모두가 잡종이었다
세계의 빛이 모이는 남쪽 바닷가
잡종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었다
* 아나키스트 자유주의자의 길을 가면서 잡종을 핵심 키워드로 내세우고 있는 김성국(1947~ )은 신국판 932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독보적인 저서 『잡종 사회와 그 친구들 : 아나키스트 자유주의 문명 전환론』(이학사, 2015.12.)으로 제62회 대한민국학술원상(2017)을 수상했다.
** 현대 한국의 제1세대 철학자이자 아나키스트였던 하기락(1912~1997) 교수의 아호. 아나키스트로서의 그의 사상과 삶을 조명한 김춘수의 시 「허유虛有 선생의 토르소」, 「제18번 비가悲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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