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문학연구회> 학술발표회
[낙동강과 구상 시인]
2022.09.16.금.15:40~16:40/상주시 낙동강문학관
구상 ‘강’문학의 동양적 융합 사유
장윤수
[목차] Ⅰ. 구상 시인의 삶과 문학, 그 회통會通과 격의格義의 양상 Ⅱ. ‘강’과 ‘물’의 동양적 뿌리 사유 Ⅲ. 위기지학爲己之學, 자기성찰을 노래하다 Ⅳ. 소요자재逍遙自在, 천진난만을 노래하다 Ⅴ. 진공묘유眞空妙有, 영원 속의 오늘을 노래하다 Ⅵ. 맺음말 |
Ⅰ. 구상 시인의 삶과 문학, 그 회통會通과 격의格義의 양상
호르크하이머는 “이론은 역사적 과정의 한 요소이고, 그 의미는 항상 일정한 역사적 상황과의 연관성 속에서 규정된다.”[Horkheimer, 1977: 136]고 하였다. 시‧공간의 틀을 갖고 있는 역사적 상황이 어떤 사상체계를 이해하는데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역사적‧사회적 배경이 없는 사상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존재할 수도 없음을 잘 알고 있다. 시인 구상의 문학사상 또한 마찬가지다. 역사적 실존 인물인 구상의 구체적인 삶과, 그가 당시 사회 속에서 직접 체험하고 고민했던 문제들이 그의 문학사상을 이해하는 데에 길잡이가 된다.
구상의 삶에 있어서 가장 두드러진 부분의 하나가 바로 기독교(가톨릭) 신앙인으로서의 짙은 배경이다. 그는 가톨릭 가정의 태중胎中 신자로 출생하여 평생 신앙인의 삶에 충실하고자 하였다. 그의 아버지 구종진(프란체스코)과 어머니 이정자(마리아)는 물론이고, 구상(세례 요한) 자신과 형 구대준(가브리엘), 아내 서영옥(테레사)도 영세를 받은 가톨릭 신앙인이다. 심지어 어머니는 순교자 가문의 출신이며, 형 구대준 또한 신부가 되어 북한 지역에서 사목 활동을 하다가 한국전쟁 이후 순교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구상 자신도 신부가 되기 위해 덕원신학교 중학부에 입학하여 3년 간 수련을 하다가 자퇴한 경력이 있고, 사후에 경기도 안성시 천주교 공원묘지에 부인과 함께 안장되었다.
그의 삶의 배경에서 유교적 영향 또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조부(구명희)는 조선 말기에 울산부사를 역임하였고, 아버지는 구한말 궁내부 주사로 근무하다가 한일합방 이후 순사교습소의 한문 교관으로 재직하였다. 그는 유교 경전과 한시漢詩에 밝았는데,[구상, 2002: 279-280] 후일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인 후에 독일계 신부들이 교구를 개설한 원산에서 해성학원을 셋이나 세우고 원장을 맡기도 했다.[시인구상추모문집 간행위원회, 2005: 532] 구상은 옛 선비였던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전전날에 자신을 병석 머리맡에 앉혀놓고 『채근담菜根譚』의 한 구절을 손수 짚어가며 교훈한 가르침, “인생은 조금 줄여서 사는 것이 곧 조금 초탈해 사는 것이니라.” 하는 말을 평생의 잠언으로 여기고 살았다.[구상, 1998: 141] 그런데 구상의 사상 경향에 있어서 유교적인 배경과 특히 문학적 감수성은 어머니로부터의 영향이 크다. 어머니는 아산이씨牙山李氏 백두진사白頭進士의 고명딸로서 상당한 학문적 수준을 지니고 있었다. 구상 스스로 어머니로부터 받은 학문적 영향에 대해 회고하면서, “당시 여인네로서는 글과 붓이 능했다. 내가 『천자문』, 『동몽선습』 등 한문의 기초과정을 익힌 것뿐 아니라 고시조와 이조李朝의 평민소설을 비롯해 신소설, 또 한글 토가 달린 『삼국지연의』, 『수호지』, 『옥루몽』 등 중국소설을 일찍 접하게 된 것은 어머니에게서였다.……다섯 살 때 그러니까 만 네 살 때 『천자문』을 떼었다.”[구상, 2002: 279-280]라고 하였다.
그리고 구상의 시문학 작품에 불교성 및 불교적 상상력이 대단히 강하게 배어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그는 실제 생활세계에 있어서도 중광, 법정을 비롯한 불교계 유명 인사들과 깊은 교류를 하였다. 이러한 특색은 그의 대학 학력 과정과 관련성이 많다. 구상은 니혼(日本)대학 종교학과에 다니면서 종교 일반과 더불어 특히 불교를 상당한 수준에서 이해하고 내면화할 수 있게 되었다. 평소 그는 친-불교적인 자신의 사유배경을 직접 해명하여 말하기를, “당시 니혼대학 종교과의 커리큘럼이란 그 60퍼센트가 불교 경전의 주석이요, 나머지가 종교의 학문적 이론이나 체계, 또는 기독교나 여타 종교의 개론 등으로 좋든 궂든 불교의 여러 경전 강의를 날마다시피 3년 동안 들어야 했다. 이것이 내가 불교를 접하게 된 동기로서 기독교인으로서는 비교적 불교에 대한 지식이나 이해가 있다고 알려지고 또 때마다 땡땡이중 같은 소리를 한다고 놀림을 받는 연유이기도 하다.”[구상, 1995: 161]라고 했다.
이러한 삶의 배경으로 인해 구상의 시문학 또한 가톨릭의 신앙 전통을 넘어서서 ‘관입실재觀入實在’의 동양적 구도자 정신을 추구하였다. 이로 인해 회통성과 격의적 양상이 구상의 시문학에 있어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으로 주목받게 된다. 여기서 말하는 ‘회통會通’이란 대립과 갈등이 높은 차원에서 해소된 ‘하나(通)’에로의 ‘만남(會)’을 의미한다.[김종문‧장윤수, 1997: 51-52]. 따라서 회통이란 어설픈 절충이 아니라 원래 ‘하나’인 진리의 조화를 의미하는 원융회통圓融會通의 정신을 상징한다. 그리고 ‘격의格義’란 원래 중국의 불교학자들이 인도에서 발생한 불가사상을 중국사회에 널리 전파하기 위해 유가·도가 등 중국 고유의 사상에서 비슷한 관념이나 용어를 빌려 썼던 방식을 말한다. 이 글에서 필자는 유가‧도가‧불가로 상징되는 동양사상을 통해 기독교를 이해한 시인 구상의 격의적 방법을 염두에 두었다. 그렇지만 구상은 동양 전통사상을 통해 기독교 신앙의 격의적 이해를 시도했을 뿐만 아니라, 기독교 신앙을 통해 동양사상의 실천적 이해를 도모한 측면도 있다 하겠다.
회통성과 격의적 방법은 모두 근원적 진리는 동일하다는 가설을 전제로 하고 있다. 구상은 진리 자체를 개개의 종교나 교리보다 앞에 두었다. 그의 시문학에는 상호 대립적인 기성 종교나 교리가 포용되고 통합되는 측면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특징은 구상 시문학의 미학사상을 보다 넓고 깊게 펼쳐나가는 계기가 되었다.[정효구, 2016: 132] 그는 유일신唯一神 신앙조차 진리가 하나라는 차원에서 이해하였는데, 그래서 “실상 하느님과 부처님이라는 낱말은 다르고 그 표현이 내포하는 뜻도 다소 다르지만 결국은 진리 그 자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생명의 원천을 일컬음이 아니겠어요? 그리고 진리가 여럿이 아니고 오직 하나라는 것이 바로 유일신 신앙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구상, 1981: 122]라고 하였다. 그는 가톨릭 정신을 형상화한 구도의 시인이었다. 이러한 면에서 보자면 구상은 종교인이 아니라 구도자적求道者的 신앙인이라 할 수 있다.
구상의 시문학을 통해 종교 간의 본래 관계가 상호 연관성 속에 있다는 신념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신념을 정통 가톨릭 신자의 모습에서 벗어난 이단의 의미로 읽을 것이 아니라, 종교적 구도성이 갖는 개방성과 성숙미로 해석해 볼 수도 있어야 한다.[정효구, 2016: 136] 구상은 세상의 여러 싸움 중에서 종교적 싸움이 가장 극악무도하다고 보았는데, 그 이유는 진리를 추구하는 근원 목적에 위배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였다.
내가 그 분의 저작에서 많은 가르침을 받은 일본의 대선사이며 대학자인 스즈키 다이세츠(鈴木大拙) 선생은 생전 그의 어문語文 속에서 가미사마(하느님)라는 낱말을 아주 천연스럽게 쓰곤 하였다. 이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궁극적 실재, 즉 진리 그 자체를 가리키는 것으로서, 그것을 위(인)격적位(人)格的으로 보든 또는 도道, 무無 혹은 브라만, 태극太極 등 비인격적 존재로 보건 별로 구애할 바가 아니라는 표현인 것이다.……세상에는 이해의 싸움, 사상의 싸움, 국가의 싸움, 종족의 싸움 등 별별 싸움이 다 있지만 종교의 싸움만큼 극악무도한 싸움은 없다. 왜냐하고 물을 것도 없이 진리를 깨우치고 섬기려는 그 근원적 목적에 스스로가 위배되기 때문이다.[구상, 1995: 165]
사실 유교가 국가이념을 이루고 있던 전통시대의 지식인들은 그들의 삶과 사유세계에 있어서 융합적인 면모를 갖고 있었다. 비록 외면적으로 유교적 모습이 강하게 드러나기는 했지만, 예술과 종교생활에 있어서는 도가‧불가적인 경향이 짙었다. 이러한 다층적인 면모를 모순으로 보기보다는 지식인의 총체적인 삶으로 이해해야 한다. 현대 한국사회에 있어서 아직도 여전히 개신교의 배타적 진리관이 강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에 기독교 신앙과 전통사상 간의 포용적 이해를 어렵게 하는 측면이 있다. 그렇지만 가톨릭적 신앙 배경을 지녔던 구상으로서는 개신교인들보다는 훨씬 더 자유로울 수 있었다. 일찍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회칙 「교회의 선교 사명」에서 타종교와의 대화가 복음화 사명의 일부임을 밝히고, 심지어 타종교 안에도 하느님께서 현존한다고 선언하였다. 따라서 선교에 있어서 배타적이지 않으면서도 상대주의적인 종교 다원주의에 빠지지 않고, 자신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면서도 극단적인 근본주의에 빠지지 않는 분별력 있는 중용의 자세가 요청된다고 하였다. 구상 또한 가톨릭교회 쇄신을 위해 로마 공의회가 선언한 입장을 적극 지지하였으며, 바로 이러한 배경에서 그는 개신교적 기독교인들보다 훨씬 더 자유로운 입장에서 종교(기독교)와 사상(동양사상) 간의 회통성을 피력할 수 있었다.
동서사상의 비교연구와 회통성에 대한 관심은 구상의 삶에서 일관되게 확인된다. 구상은 1947년에 갓 월남하여 ‘동서 종교사상의 비교연구’라는 과제를 설정하고 북경 보인대학輔仁大學에 유학하고자 했으나 당시 혼란한 중국 국내 정세로 인해 뜻을 이루지 못한 바 있다.[구상, 1982: 189쪽] 그리고 하와이대학의 초청강의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일본 동경의 가톨릭 선禪 도량이라고 할 수 있는 신명굴神冥窟을 방문하기도 했다. 신명굴은 일본 예수회에서 불교식 좌선과 기독교적 영성(특히 신비주의)을 접목한 피정(黙想會)을 위한 장소이다. 구상은 당시 구입했던 에노미야-라살(Enomiya-LaSalle) 신부의 『선과 기독교』라는 책을 통해 크게 감명받았다. 에노미야-라살은 이 책에서 선불교의 최고 경험인 ‘견성見性’과 가톨릭 신비가들의 ‘관상觀想’ 경험을 격의적으로 대비하였으며[구상, 1995: 156-157] 가도와키 가기치(門脇佳吉)의 『선禪과 성서』에 나오는 “나는 선을 통하여 기독교 신앙을 더욱 깊이 하였다.”는 구절을 인용하기까지 하였다.[구상, 1995: 160]
구상의 이러한 사상편력은 당연히 그의 문학작품에도 반영된다. 그는 자신의 시가 갖는 특징을 설명하면서, “우리 시의 민속적 감성만의 서정이나 그 표현은 존재론적 인식이나 보편성이 결여되어 외국인에게는 잘 이해되지 않는 데 비해 내 시가 지니는 크리스천으로서의 바탕을 둔 존재론적‧형이상학적인 독창적 인식, 논리적 시상이나 동양적 또는 역사적 현실의식의 상이에서 오는 이색감이 관심을 불러일으킨다고 보여진다.”[구상, 2002: 288-289]라고 하였다. 즉 자신의 시문학에 있어서 기독교 세계관의 존재론적 인식과 동양적 사유의 융합 상상력이 지니는 특이함이 외국 독자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킨다고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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