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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령]-명칭의 유래-2019년 11월

김주완 2019. 11. 30. 13:04

언령(言靈) 명칭의 유래

 

김주완

 

19881029, 구상 선생님이 추천 발굴한 시인들 및 강단 제자 출신 시인들 약 20여명이 서울 여의도 구상 선생님 자택 근처의 식당에 모였습니다. ‘언령(言靈)’ 동인 결성과 동인지 언령창간을 위한 모임이었습니다. ‘언령동인 참가 예정 시인은 구상 선생님을 포함하여 30명이었는데 구상 선생님이 직접 지명한 사람들이었습니다. 30명의 거주지는 서울, 경기도, 강원도, 충남, 대구, 경북, 부산, 경남, 광주, 전북 등 전국적인 분포를 보였으며 서울경기에서만 17명을 차지했습니다. 구상 선생님이 평생에 걸쳐 추천한 시인들은 그리 많은 인원이 아니었으며 대구에서는 저 혼자뿐이었던지라 저는 그러한 연유로 그 자리에 참석하였습니다.

 

그 자리에서 19893월 말에 언령창간호를 발간하기로 결정하였고 동인지 성격은 시와 시론 무크지 성격으로 하며 발간형태는 연 1회로 하기로 했습니다. 1인당 5편이내의 시와 동인 자신의 작품세계를 조명하는 주관적 시론(원고지 10장 내외)1989215일까지 제출하기로 하였습니다. ‘언령동인 대표는 김광림 시인이 맡았으며 아래의 공문과 명단(첨부 1, 첨부2)처럼 대략적인 조직도 갖추었습니다. 구상 선생님께서 언령동인 결성을 처음 생각하신 것은 1980년 초라고 합니다.

 

언령(言靈)’이라는 명칭은 구상 선생님이 직접 작명하신 이름이었습니다. <시의 언어가 가진 신령한 힘>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구상 선생님께서 평소에 가지셨던 시에 대한 신념을 나타내는 말이기도 합니다. 시인이라면 모름지기 언령에 경외하면서 표상과 실재가 일치하는 시를 써야 한다고 구상 선생님은 자주 강조하셨습니다. 표상과 실재가 일치하지 않는 시, 언어적 분장에만 힘쓰는 시를 쓰는 시인은 불가에서 말하는 기어(綺語)의 죄(비단 같은 말을 하는 죄)를 범한다고 하셨습니다. 기어의 죄를 짓게 되면 죽은 후에 무간지옥에 떨어져 혀가 만 발이나 빠지는 형벌을 받는다고도 하셨습니다.

 

이와는 달리 니콜라이 하르트만의 저서 정신적 존재의 문제(Das Problem des geistigen Seins)에서 ‘Geist der Sprache’를 한국 현대철학 제1세대 학자이자 아나키스트였던 하기락 박사님은 1990년에 언령(言靈)’이라고 번역하신 바 있습니다. 저에게 철학을 가르쳐주신 은사이신 하기락 박사님과 시의 스승이신 구상 선생님은 젊은 시절부터 막역한 교분을 나누시던 사이셨으며 만년까지 자주 만나셨습니다. 어쩌면 구상 선생님께서 먼저 사용하기 시작한 언령이라는 용어를 하기락 박사님이 번역에 차용하신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Geist der Sprache’를 직역하면 말의 정신입니다. 그러나 본래적 뜻의 전달에 미흡하다고 보아서 하기락 박사님은 언령으로 의역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작품이 모아지고 있던 1989315일 구상 선생님은 갑자기 시동인 언령결성을 취소하셨습니다. 아마 깊은 고뇌 끝에 내리신 결정이신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언령동인 결성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에게 아래와 같은 서신(첨부 3, 첨부 4)과 창간호에 게재하려고 쓰신 구상 선생님의 시 언령을 보내 오셨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나중에 구상문학관이 건립되고 여기서 배출되는 시인들이 모여서 동인 명칭 언령을 사용하라고 그 당시에는 취소하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구상 선생님은 선견지명을 가지셨던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