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낭송에 대한 철학적 해명과 시낭송 치료의 가능성 모색
김주완
Ⅰ. 시낭송의 연원과 역사적 전개
시낭송의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고대 샤먼의 주술행위에서 찾을 수 있다. 원시사회의 샤먼은 인간과 신을 연결하는 가교였으며 신의 명령을 인간에게 전달하는 신성한 매개자였다. 샤먼은 신과 소통하기 위하여 일상인의 말과는 다른 말로 노래하고 춤추며 기도했을 것이다. 이러한 샤먼의 행위는 오늘날의 시낭송과 흡사하다. 노래와 기도는 낭송과 연결되고 춤은 낭송가의 몸짓과 연결되며 노래와 기도의 내용(가사)은 시와 연결된다. 물론 샤먼의 주술행위는 시낭송만의 연원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음악, 무용, 문학, 연극 등 여러 예술로 분화했다는 가설이 있어 왔고 그것은 또한 공감이 가는 설명이다.
원시인들이 사냥에서 돌아와 풍성한 사냥의 기쁨과 사냥감의 나눔을 위하여 한데 모여 노래하고 춤추는 행위나 군무를 추고 합창을 하는 행위는 오늘날의 윤송이나 합송과 연결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불렀다는 기록과 함께 전해 오는 신라 향가는 시낭송과 가장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달밤에 밖에서 놀다가 집에 돌아온 처용이 아내의 잠자리를 보고 놀라서 부르는 처용가나 선화공주를 얻기 위해 아이들에게 전파시킨 서동요는 모두 노래라기보다는 시낭송에 오히려 더 근접한다. 고려 속요 또한 시낭송의 연원으로 볼 수 있다.
고려 속요가 민중층에서 향유한 것이라면 사대부층에서 향유한 것으로는 시회가 있다. 시회는 문자를 독점하고 있었던 지식인이나 사대부 중심으로 개최되었으며 선비들이 풍류를 즐기던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시회를 열고 한시 창작과 자작시 낭독을 했던 것 같다. 쉽게 기록을 찾을 수 있는 행사로는 1196년(고려 명종 26년) 상주 도남서원과 경천대 부근의 낙동강을 배경으로 백운 이규보(1169~1241)가 개최하였던 <낙강시회>1가 있다. 낙동강에 뱃놀이를 하면서 운치를 즐긴 낙강시회는 시회마다 제목을 정하고 참가자를 기록하여 『낙강범월시』라는 책자로 남겼다. 이 행사는 1862년(철종 13년)까지 666년 동안 총 51회에 걸쳐 계속되다가 중단된 것을 상주를 지키고 있는 한국문단의 원로 박찬선 시인이 2002년 부활시켜 오늘날까지 행사를 이어오고 있다. 지금은 배를 띄우지는 않지만 옛 선비들의 풍류정신을 이어가면서 백일장, 시낭송, 책자발간 등을 하고 있다. 고려나 조선 시대의 시회에서의 시낭송은 시조창의 형태로 오늘날까지 전승되기도 한다. 그러나 자유시가 없었던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면 오늘날의 시낭송의 연원이 된다고도 할 수 있겠다.
뿐만 아니라 민간에서 구전으로 전해 오던 농요나 노동요 또한 시낭송과 연결시킬 수 있다. 범위를 넓히면 조선 시대의 내방 가사 낭독이나 서간문 낭독 등도 낭송 문학의 효시가 된다고 할 수 있으며 나아가서는 시낭송과의 연관성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현대에 와서도 출판기념회나 문학상 시상식의 후반부에서 흥에 겨우면 시를 쓴 시인들이 직접 무대에 나와서 자작시 낭송을 하는 것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혹은 프로그램 제작의 필요성에 의하여 성우나 아나운서가 시낭송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Ⅱ. 한국 현대 시낭송의 유래와 예술적 위치
오늘날 민간 차원에서 확산되고 있는 시낭송을 현대 시낭송이라 한다면 그 유래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고 그러한 시낭송의 예술적 위치는 어떻게 규정되는가?
한국 현대 시낭송의 효시는 1967년에 서정주, 구상 등이 주도한 <시인만세>라는 시낭송축제가 중단과 점철을 반복하면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으며2 1986년에 나온 ‘시인만세’ 시낭송 콩쿠르의 <무대 위의 시>3도 있다. 뒤이어 JEI 재능교육이 문화예술지원사업의 하나로 1991년에 시작한 <제1회 전국 어린이와 어머니 시낭송대회>4가 <재능시낭송대회>와 <재능동화구연대회>로 이어져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다. 이 행사는 교육부,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등의 후원으로 운영된다.
정기 시낭독회로는 공간시낭독회가 있다. 공간시 낭독회는 구상, 박희진, 성찬경 시인이 만든 한국 최초의 정기 시낭독회로서 1979년 4월 건축가 김수근의 건축 작품 ‘공간사랑’에서 처음 문을 연 후 매달 한 번씩 낭독회를 열었다. 낭송가가 아니라 전문 시인인 이들은 시의 대중화를 위하여 자작시를 들고 나와 낭독하고 해설하는 방식으로 진행하였다. 세 분 모두 고인이 된 지금은 후배 시인들이 물려받아 이어가고 있다.5
현재 전국의 낭송가는 대략 1,000명 정도6로 추산되며 전국 시ㆍ군ㆍ구 지역 단위에 시낭송가가 없는 곳이 없는 실정이다. 본격적으로 시낭송가가 등장하기 시작한 2005년 이후 10여년 만에 낭송문학의 위상은 이처럼 크게 신장되었다. 국내 최대 문학단체인 한국문협에 낭송문화위원회가 설치되어 소속된 위원들이 활동하고 있으며 각 대학의 평생교육원에 낭송강좌가 속속 개설되고 있다. 크고 작은 시낭송대회가 연중 이어지고 있으며 문학행사에는 거의 빠짐없이 시낭송 순서가 등장한다. 낭송인구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낭송 관련 인터넷 사이트도 증가하고 있다. SNS상의 동영상 파일의 유통도 늘어나고 있다.
시낭송의 외연은 이렇게 확대되었는데 이론적 체계화나 조직 등은 아직 초보 단계이다. 현재 시낭송 관련 이론서는 인터넷상으로 4권 정도 검색7되고 있으며 관련 논문은 없을 것으로 추정된다. 시낭송 전공 학과가 정규 과정으로 개설된 대학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으며 문예창작학과 커리큘럼에도 시낭송 강좌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대학 구조 조정으로 문예창작학과가 속속 폐과되는 상황에서 시낭송학과가 신설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예술분류 체계상에서 또한 시낭송은 아직 그 위치를 부여받지 못하고 있다. 다만 시에 소속되어 시와 음악의 하이브리드를 시도하는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어쩌면 낭송문학이 하나의 장르로 정착하지 못하고 일시적인 유행으로 끝나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럴 가능성은 그렇게 높아 보이지 않는다. 흐름의 탄성이나 관성이 만만찮기 때문이다.
낭송문학이 어떤 방향으로 발전하고 정착될지는 불확정적이지만 한 세대를 20년 정도로 본다면 지금 활동하고 공부하는 사람들이 한국낭송문학의 1세대가 될 것임은 분명하다. 그들 중의 일부는 대표적 낭송가로 성장하여 이름을 남길 것이며 특정한 유파의 효시가 될 수도 있다.
시낭송의 붐을 하나의 사회현상으로 치부하고 방관할 것이 아니라 현재 좌표를 점검하고 발전방향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 왔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글은 시낭송의 철학적 본질을 해명하고 그 발전방향의 하나로서 시낭송 치료의 가능성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Ⅲ. 시낭송의 철학적 본질
1. 기초감각예술로서의 시낭송
시낭송은 기초감각에 호소하는 예술이다. 왜냐하면 시를 낭송하는 일은 특정한 공간 안에서 인간의 기초감각인 청각으로 전달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소리 감각인 청각은 인간이 가진 다섯 가지 감각(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중에서 가장 기초적인 감각이다. 소리는 곧바로 전달된다. 다른 매개물이 필요하지 않다. 시각은 빛과 색깔과 형태를 가진 사물의 현상을 통하여 전달되고 후각은 냄새를 가진 사물을 통하여 전달되며 미각과 촉각은 음식이나 대상을 통하여 전달되지만 소리는 그러한 매개물 없이 바로 전달된다. 태교 음악이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임부는 태교 음악을 들으면서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다. 임부의 그러한 마음의 평안은 생리적으로 태아에게 직접적으로 전달된다. 임부가 가지는 마음의 평안은 임부의 뇌파에 작용하여 인체가 안락을 느끼는 파장으로 만들어져 태아에게 전달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뿐만이 아니다. 태교 음악은 임부의 복부와 자궁의 피부를 통과하고 태아의 피부를 통과하여 태아의 뇌로 바로 전달되기도 한다.
어머니의 뱃속에서 가장 먼저 익히게 된 청각은 인간의 삶이 끝나는 마지막까지 남아있는 감각이라는 설도 있다. 시각, 후각, 미각, 촉각 등이 모두 사라진 임종 직전의 식물인간도 소리에는 반응한다고 한다. 그리하여 호스피스 병동에서는 환자의 귀에다 대고 사랑한다고 말하거나 좋은 곳에 가시라고 속삭여서 따뜻하고 평안한 말을 들려 주라고 임종하는 가족들에게 당부하기도 한다.
시낭송은 소리에 시를 싣는 일이다. 시 자체가 가진 운율(자유시에는 내재율)에 낭송가의 음성과 음색, 음형상을 가미하여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하는 것이 시낭송이다. 시낭송은 인간의 원초적 감각인 청각에 곧바로 호소하는 예술이다.
2. 음악과 소음
음악은 글자의 뜻 그대로 ‘소리의 즐거움’이다. 소리를 즐기는 것이 음악이다. 즐거움의 반대는 괴로움이다. ‘괴로운 소리’는 곧 소음이다. 소음보다 강도가 더 센 굉음은 ‘공포스럽고 고통스러운 소리’이다. 소리가 이와 같이 즐거울 수도 있고 괴로울 수도 있으며 나아가 고통스러울 수 있다는 것은 소리가 인간의 감정에 영향을 끼친다는 말이 된다. 환언하면 소리는 감정표현의 기초를 가지고 있으며 심리적인 내용이 소리를 통하여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소리가 감정에 영향을 끼치고 감정이 소리를 통하여 드러난다는 말이기도 하다.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상대방의 말소리를 듣고 상대방의 기분 상태를 곧바로 알아채게 되는데 그것은 상대방의 마음이 소리 속에 담겨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소리가 인간의 마음이나 정신을 나타낼 수 있는 이유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로 설명될 수 있다.8
첫째, 소리의 세계와 심리적 세계는 서로 다른 것 같지만 실제로는 동질적이다. 양자는 비공간(비물체)적이며 유동하고 변화하며 흥분과 진정, 긴장과 해이의 대립 속에서 전개된다. 그러므로 심리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동질적인 소리의 예술이 가장 적합하다.
둘째, 소리의 요소에는 다른 감각적 요소(시각, 후각, 미각, 촉각)에서 보다 훨씬 더 강한 감정적 내용이 있다. 자연적이거나 예술적이거나 간에 소리를 듣는 모든 사람은 음색을 통하여서 찢어지는 소리, 천둥 소리, 성난 소리, 경쾌한 소리, 슬픈 소리들을 구별한다. 소리를 들음으로써 평안해지기도 하고 불안해지기도 한다. 기뻐지기도 하고 슬퍼지기도 한다. 예컨대 새소리나 개울물 소리는 우리를 안정시키고 천둥소리는 우리를 공포 속으로 몰아간다.
소리의 이러한 특성을 이용한 예술이 음악이다. 예술의 사전적 의미는 ‘아름다움을 표현하려는 인간의 활동이나 그 작품’이다. 아름다움을 말이나 문자로 표현하면 문학이 되고 아름다움을 소리로 표현하면 음악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쇼펜하우어는 “모든 예술은 음악의 상태를 동경한다.”고 한다. 모든 예술은 음악처럼 직접적으로 전달되는 상태가 되기를 소망한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문학은 문자를 매개로 하여 독자에게 전달되고 미술은 색채와 형체(캔버스)를 통해서 감상자에게 전달되며 조각은 청동이나 대리석을 통하여, 연극은 무대와 배우의 연기를 통하여 전달되는데 음악은 그러한 매개물 없이 직접적으로 전달되는 것이다.9
3. 시낭송의 문학성과 음악성
시는 ‘존재의 이름을 부르는 일’이고 낭송은 시에 옷을 입히고 생명을 불어넣는 일이다. 시인은 존재에 새로운 이름을 붙임으로써 새로운 존재를 창조하고 새로운 존재가 늘어나는 만큼 세계는 확장된다. 낭송가는 시에 옷을 입히고 생명을 불어넣어 사람들에게 전달한다. 시인이 생산자라면 낭송가는 포장하여 전달하는 자이다. 그러나 낭송가는 그냥 옷을 입히고 그냥 생명을 불어넣는 것이 아니라 자기만의 옷을 만들어 입히고 자기만의 생명을 만들어 불어넣는다. 그런 의미에서 낭송가는 단순한 전달자이거나 매개자가 아니라 당당한 재창조자이다. 시인은 시를 생산하고 낭송가는 낭송시를 생산한다. 낭송시는 시인이 생산한 당초의 시에다가 낭송가의 창의력과 예술성이 가미된 또 하나의 예술작품이다. 그러므로 낭송시에는 문학성이 담지될 수밖에 없고 시낭송은 원천적으로 문학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리하여 시인이나 낭송가나 다 같이 독창적인 예술가의 길을 독자적으로 간다.
시 자체에도 운율이 있다. 현대시에 있어서는 내재율이라고 하는 음악성이 있다. 그러나 낭송은 내재율을 보다 더 강하고 감동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음악성을 가미한다. 시낭송은 시낭송 그 자체를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시의 정신적 내용을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 있는 것이다.
시낭송은 일회적이다. 낭송가는 구체성과 직관성을 가지고 또한 자기만의 독창적 낭송 기법을 가지고 한 편의 시를 낭송하지만 그 낭송은 할 때마다 조금씩 달라진다. 바로 그것은 낭송할 때마다 낭송된 시는 하나의 낭송 작품으로 완성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같은 시를 낭송하더라도 다른 시간에 다른 장소에서 낭송하게 되면 또 다시 새로운 낭송 작품을 완성시키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시낭송 작품은 일시적인 것이다. 한 순간에 낭송 작품이 되고 금세 사라지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 어떤 이는 녹음되거나 녹화된 시낭송 작품은 여러 번 재생이 가능하므로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고 반론을 펼 수도 있다. 물론 시낭송 작품은 MP3나 MP4 파일로 만들어지거나 CD로 제작되어 유통되고 어디서든 이것을 재생할 수 있다. 같은 기계로 같은 파일을 재생한다고 할 때 재생할 때마다 과연 동일한 작품이겠는가? 아니 그 이전에 현장에서 낭송가가 직접 낭송한 낭송시 작품과 녹음이나 녹화한 작품이 동일한 것인가? 여기에 대해서 니콜라이 하르트만은 아니라고 한다. “오늘날의 발달된 기술은 어느 정도 낭송(음악 또는 소리)의 지속을 가능하게 하지만, 그것은 아주 정밀하고 완전한 소리의 보존은 아니다.”10 그러니까 실제의 소리와 녹음된 소리는 같은 소리가 아니라는 말이다. 음악의 본질도 마찬가지이며 시낭송이 소리예술인 한에 있어서 이러한 완성된 작품의 일회성은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이다. 방송으로 접하는 오페라 보다 오페라 하우스에서 직접 접하는 오페라가 오리지널이라는 말과 같다. 사람들이 라이브를 선호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렇다고 해서 시낭송을 듣는 사람은 찰나적으로 듣는 것이 아니다. 시낭송이 진행되는 동안에 청중은 낭송시의 앞뒤를 연결하여 듣고 있으며 시낭송이 끝나버린 뒤에도 청중들에겐 통일적인 시낭송 작품에 대한 잔잔한 여운이 여전히 남아 있다. 순간적으로 들으면서도 전체를 듣고 낭송이 끝난 뒤에도 가슴 속에는 낭송시가 남아 있다. 그것은 시낭송을 순간적ㆍ분절적으로 듣는 것이 아니라 통일적으로 듣기 때문이다. “통일적인 것은 들을 수 있는 소리가 이미 그쳐버린 뒤에도 그냥 남아 있다.”11 낭송시는 귀로 듣지만 단지 청각적으로 듣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음향적ㆍ조화적으로 낭송시의 통일을 듣는 것이다. 그 통일은 감각적으로 듣는 것 이상의 들음으로서 정서적ㆍ정신적 들음이 그 속에 포함된다.
통일적인 것을 듣는다는 것이 낭송시 속의 서사를 듣는다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물론 서사는 보다 오래 우리의 가슴속에 남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것은 단순한 서사뿐만이 아니라, 낭송가의 음색, 표정과 몸짓, 주변적 분위기 등을 종합하여 통일적으로 듣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면서도 어려운 시 보다는 쉬운 시가 낭송에는 적합하다. 시낭송은 전달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고도의 상징과 은유를 구사한 시, 내면의 의식을 풀어내는 데 치중한 시는 낭송시로 적합하지 않다. 서정에 의존하는 시가 낭송시로 적합하고 고도의 지성에 의존하는 시는 낭송에 적합하지 않다는 말이기도 하다.
4. 시낭송이 예술이 되기 위해서는
아무리 음성이 곱고 맑더라도 시낭송이 낭송가의 목소리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 그럴 때는 자연미에 머물고 말기 때문이다. 인위적인 연습과 노력을 통하여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 내는 것이 예술이다. 시낭송가는 시를 음성 위에 얹어 시낭송 작품을 창작한다는 자부심과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시에 옷을 입히고 생명을 불어 넣는 일이 시낭송이라면 시낭송가는 ‘어떤 옷을 입힐 것인가?’, ‘어떤 생명을 불어넣을 것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시험해야 한다. 아마추어 단계에서는 기성의 낭송법을 따라서 하는 것이 용인될 수 있겠지만 더 큰 성장을 시도하는 낭송가는 뒤따라가는 모방을 더 이상 하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자존심이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술은 기술이다. 예술(Art)의 의미 가운데는 기술이라는 의미가 있다. 예술(藝術)이라는 한자어도 두 글자가 모두 재주라는 의미를 가진다. 그러므로 예술은 재주와 기술에서 나오는 것이다. 자연 그 자체가 예술이 될 수는 없다. 단지 사람들이 자연적인 대상에서 예술미를 느낄 수는 있겠지만 그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아름다움을 대상적으로 분류할 때 자연미, 인간미, 예술미로 나눈다. 이때 자연미는 말 그대로 인위적인 것이 가해지지 않은 순수한 자연 그대로의 대상에서 느끼는 아름다움이다. 대표적인 것이 풍경의 미이며 동물이나 식물의 미도 자연미에 포함된다. “모든 예술 활동 이전에 이미 현존하고 있는 미가 자연미이다”.12 자연미의 반대편에 서 있는 것이 예술미이다. 예술미는 전적으로 인위적인 미이다. 예술가가 그가 가진 기술과 재주로 창조한 아름다움이 예술미이다. 인간미는 자연미와 예술미의 종합이다. “인간의 아름다움은 자연미와 창조미(인간이 스스로 노력하여 만들어내는 미)로 나누어진다”.13 인간의 아름다움은 타고난 아름다움(주로 외모)과 그가 가꾼 아름다움(지성미, 세련미, 소박미, 인격미 등)이 합해졌을 때 인간미가 된다. 그러나 미가 현실적으로 나타날 때는 언제나 복합적으로 나타난다. 어느 한 가지 아름다움만이 독립해서 나타나는 일은 극히 드문 일이다. 예컨대 거대한 폭포를 보고 우리가 느끼는 것은 자연미인 동시에 숭고미이다. 아름다운 것은 철저히 대상적인 것이다. “감상이 아름다운 것이 아니고 창작이 아름다운 것도 아니라 오로지 대상만이 아름다운 것이다”.14 시낭송도 마찬가지이다. 시낭송가가 아름다운 것도 아니고 청중이 아름다운 것도 아니라 다만 시낭송 작품만이 아름다운 것이다. 예술은 본질적으로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인간의 활동이다.
시낭송이 예술이 되기 위해서는 아름다움을 창조해야 한다. 창작이란 처음으로 만들어냄을 의미한다. 다른 사람의 시낭송을 따라 하는 것은 모방이다. 물론 한때 모방이 곧 예술이라는 모방론이 주류인 적이 있었다. 그러나 예술 공부의 출발에서는 모방을 통하여 기술을 익힐 수 있겠지만 제대로 된 예술가가 되기 위해서는 하루빨리 모방에서 벗어나야 한다. 모방은 모방이지 창작이 아니기 때문이다. 재주와 기술은 타고난 부분도 있지만 노력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천부적인 것은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다. 다만 노력만이 더하고 덜하고를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부문이다.
시낭송이 예술이 되기 위해서는 낭송가들이 타고난 목소리만으로 낭송을 계속할 것이 아니라 타고난 목소리를 자기만의 목소리로 계발해야 하고 자기만의 낭송법, 자기만의 호흡, 자기만의 정조, 자기만의 제스처를 만들고 끊임없이 자기의 기법을 향상시켜야 한다.
5. 시낭송가는 어떤 사람인가?
시낭송가는 아름다움으로 사는 사람이다. 그들은 고운 음성과 아름다운 외모를 가졌다. 마음도 따뜻할 것이라고 우리는 미루어 짐작한다. 표정과 음성은 맑고 밝으며 정서는 촉촉하다. 흐림과 어둠을 걷어내는 그들을 아침 풀잎에 맺힌 이슬방울 같은 사람이라고 해도 될까. 그들은 시낭송을 통하여 주변을 정화시키는 사람이다. 사람들의 메마른 심성을 윤습하게 적셔 주는 사람이다.
시낭송가는 남들에게 주면서 사는 사람이다. 그들은 ‘낭송의 행복’을 ‘청취와 관람의 행복’으로 나누어 준다. 환언하면 낭송가는 낭송해서 행복하고 청중은 들어서 행복하다. 그들은 시를 사랑하고 삶을 사랑하면서 그것을 청중에게 나누어주는 사람이다. 모든 예술이 그러하듯이 그들은 니체가 말한 증여덕을 행하는 사람이고 기독교에서 말하는 이웃사랑의 실천자이다.
시낭송가는 치유하면서 산다. 낭송을 하면서 그들은 자기 자신 속에 막혀 있고 갇혀 있던 것들을 풀어낸다. 발성이 가지는 부수적 효과이다. 일반인은 숨이 막히면 심호흡을 한다. 시낭송가들은 답답할 때 시낭송을 한다. 뿐만이 아니다. 그들의 시낭송을 듣는 청중이나 관객들은 감동하면서 뒤이어 오는 시원한 느낌은 받는다. 그것은 그들의 가슴 속에 묶여 있는 억압과 트라우마가 풀려 나오는 현상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낭송가는 치료자이자 주술사이다. 그들은 청중에게 일시적이고 제한적일망정 각(覺)을 주고 해탈을 준다. 청중에게 비워낸 허공을 선사하는 그들은 자비롭다.
시낭송가의 호흡법은 우주의 맑은 에너지를 몸 안에 모아서 다시 우주로 내보내는 방법을 쓴다. 시낭송가는 뽕잎을 먹고 명주실을 뽑는 누에 같은 사람이다. 그들은 노력하고 극기하면서 우주의 기를 모아 자기 속으로 들였다가 다시 내보내면서 사는 자연 상태의 무위(무위자연)를 터득한 사람들이다.
6. 최고의 시낭송가가 되기 위해서는
최고의 시낭송가가 되기 위하여 설정해야 할 지향점은 무엇인가? 그것은 수준이 낮은 시라고 하더라도 그가 한번 낭송하고 나면 최고 수준의 시가 되게 하는 마법을 가진 낭송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지향점에 도달하기 위하여 시낭송가가 노력해야 할 사항은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① 프로의식을 가져라.
아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유명 시인들의 잘 알려진 시 낭송을 지양해야 한다. 그런 시는 이미 남들이 다 낭송한 시이다. 따라서 뒤따라가는 낭송이 될 수밖에 없다. 모방하거나 추종하는 낭송은 금물이다.
② 자기만의 낭송법을 개발하라.
가수의 가창력처럼 낭송가는 낭송력이 필요하다. 가수가 자기만의 창법이 있듯이 시낭송가는 자기만의 낭송법이 있어야 한다. 얼굴을 보지 않고 낭송만 들어도 누군지 알 수 있는 낭송법이 필요한 것이다. 링컨의 케티스버그연설은 3분짜리이지만 미국의 역사를 바꾼 명연설이다. 3분 낭송으로 세계사를 바꿀 수 있는 자기만의 낭송을 지향해야 한다.
③ 전문 낭송 분야를 개발하라.
모든 주제, 모든 경향의 시를 모두 낭송하려고 하면 어느 것도 전문적이 될 수 없다. 주관적일 수 있지만 시의 분류에 따른 특성을 살펴본다면 노동시나 민중시는 대중적 호소력과 선동력이 있어야 한다. 명상시나 치유시는 진정력과 전달력이 높아야 하며 무엇보다 치료효과가 있어야 한다. 축시, 조시, 기념시 등의 행사시는 대중성과 감동성이 있어야 한다. 시의 주제에 따른 낭송법은 모두 다를 것이다. 자기만의 개성적 낭송법으로 자기만의 전문 분야가 있어야 한다.
④ 자기 브랜드 가치를 올려야 한다.
처음 시낭송을 시작하면 무대에 서는 그 자체에 보람을 느낄 수 있다. 의상을 갖추어 입고 무대 위에서 멋있게 낭송을 하고 관객의 박수를 받으면서 자부심이 생길 수 있고 희열을 느낄 수도 있다. 또 다른 무대에 서고 싶어진다. 출연 교섭이 들어오면 출연료는 묻지도 않고 선뜻 승낙해 버린다. 그러나 이러한 자세는 바람직하지 않다. 아무 무대나 가리지 않고 오르면 이미지 관리가 되지 않는다. 값없는 시낭송가로 낙인찍힐 수도 있다. 인지도는 어쩌면 스스로 제고시키는 것일 수도 있다. 시낭송은 보통 3분 이내에 끝이 난다. 무대에 오르는 기회가 왔을 때 3분에 승부를 걸어야 한다. 최선을 다해 준비한 모든 것을 보여 주어야 한다. 그리고 무대를 골라서, 출연료를 확인하고 조절하면서 출연을 승낙해야 한다. 사생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성실한 사람, 조신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아야 한다. 한마디로 최고의 시낭송가가 되려면 신비로우면서도 믿음이 가는 사람의 이미지를 스스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⑤ 영역을 넓혀야 한다.
활동 영역이라는 것이 있다. 그가 살아가는 일정한 범위가 활동 영역이다. 맹수에게도 활동 영역이 있고 토끼에게도 활동 영역이 있다. 무릇 모든 살아있는 것은 그가 활동하는 범위 안에서 살아간다. 시낭송가에게도 활동 영역이 있다. 어느 소도시의 시낭송가로 활동하는 사람도 있고 보다 넓은 광역에서 활동하는 사람도 있으며 전국적으로 활동하는 사람도 있다. 시낭송이 관객의 묶인 마음을 풀어주는 치료 효과가 있다면 많은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 필요하고 그러기 위해서 시낭송가는 활동 영역을 넓힐 필요가 있다. 지역의 확장은 공간의 확장이며 당연하게 가상공간도 여기에 포함된다. 활동 영역을 넓히라는 말은 보다 역동적으로 활동하라는 말과 같다. 세계 무대를 휩쓸고 있는 한류 열풍에서 그 좋은 예를 볼 수 있다. 활동 영역은 먹이 사냥의 영토이다. 맹수도 생존을 위하여 영역 싸움을 한다. 시낭송가는 활동 영역을 넓히기 위하여 경쟁하여야 한다. 활동 영역을 넓히는 데는 실력의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 실력은 노력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다.
⑥ 좋은 조력자를 찾아 도움을 받으라.
성공하는 가수는 좋은 기획사가 만든다. 시낭송가도 매니저가 필요하다. 시낭송가는 낭송 실력의 향상과 새로운 낭송 기법의 개발 등 자기 발전에 주력하고 공연이나 기획, 출연 교섭 등 낭송 외적 문제는 매니저에게 맡겨야 한다. 가족은 가장 좋은 매니저이자 스폰서의 조건을 가장 많이 갖추고 있는 자이다.
Ⅳ. 시낭송의 현재 좌표와 발전 방향
1. 시낭송의 현재 좌표
시는 끊임없이 진화하고 발전한다. 이는 식상함과 진부함을 기피하는 시작(詩作)의 속성과 독창성과 개성을 추구하는 시인의 자존심이 상호 상승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시인은 지나간 시에 연연하지 않는다. 사물을 끊임없이 새롭게 보고 새로운 형식의 시에 담으려고 한다. 진화하기에 바쁜 시인은 뒤돌아볼 겨를이 없다. 앞서가는 시인의 시가 자꾸 어려워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선봉에서 전진하고 있는 소수의 시인들은 어쩌면 자기만족을 위하여 시를 쓴다. 대중의 기호에 맞추다 보면 시의 수준이 평균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들은 그것을 거부하고 최고의 시를 쓰고자 한다. 스스로 평균보다 높은 수준의 시를 썼다고 생각할 때 그들은 만족한다. 그러나 그 만족은 끊임없이 불만족으로 바뀐다. 끊임없이 더 수준 높은 시를 쓰고자 하기 때문이다. 기시감이 있는 시, 표절기가 있는 시를 백안시하는 그들은 더욱더 개성적인 시, 더욱더 독창적인 시를 쓰기 위하여 노심초사한다. 기성시를 탈피함은 물론 파괴하고자 한다. 독자 또한 마찬가지이다. 고급 독자일수록 기존의 시에서는 시의 맛을 느끼지 못한다. 유치해 보이기까지 한다. 씹을 맛이 있는 시, 몇 번이고 다시 읽어야 감이 잡히는 시를 선호한다. 소수의 고급 독자와 소수의 고급 시인이 시를 자꾸 어려워지도록 이끌고 간다.
이와 반대로 시낭송가는 지나간 시에 매력을 느낀다. 전달력이 좋기 때문이다. 전달력이 좋다는 것은 청중이 시낭송을 듣고 금방 이해하며 감동한다는 말이 된다. 따라서 낭송가는 전달력이 좋은 시를 선호하게 된다. 시낭송가는 소수의 선진 시인이나 고급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을 대상으로 한다. 말 그대로 대중이라는 개념은 보통의 사람들을 중심에 두는 개념이다. 따라서 대중적인 시가 낭송시의 주류를 이룬다. 누가 어느 낭송대회에서 어떤 시로 대상을 받았다고 하면 바로 그 어떤 시를 거의 대부분의 낭송가들이 따라서 낭송한다. 이미 잘 알려져 있고 청자의 감동이라는 검증을 이미 받았으며 낭송의 기법이나 형식 또한 이미 나와 있으므로 참고하거나 모방하면서 따라가면 어느 정도의 성과는 이미 보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중적 감동과 지지를 필요로 하는 시낭송에서는 어렵고 수준 높은 시를 선택할 이유가 전혀 없다. 이리하여 시가 진취적이라면 시낭송은 보수적이며 시가 미래 지향적이라면 시낭송은 과거 지향적이 될 수밖에 없다.
시간 투자와 경비 부담이 가능한 유족한 자들이 취미 삼아 시낭송을 연습하고 출연료가 보장되지 않거나 격이 낮은 무대에 가끔씩 서고 있다. 여기서 보람을 느낄 수도 있지만 그 보람이 오래 갈 수는 없다.
대형 공간에서의 시낭송 콘서트나 발표회 등 개인 공연은 아직 활성화되고 있지 않다. 지금까지의 추세는 소수의 청중이 모인 공연장에서 시낭송이 대체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시낭송이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들려질 수 있는 사회적, 문화적 환경이 아직은 조성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시낭송가는 낭송하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 보람을 느끼고 스스로 감동할 수는 있겠지만 청중은 그렇게 감동하지 않는다는 문제점도 있다. 일반인은 재미를 느끼지 못해서 시낭송을 듣지 않고 시인은 다른 시인의 시를 듣고 싶지 않아서 시낭송을 듣지 않는다. 수준 높은 시인들은 낭송시의 내용이 유치하여 듣지 않는다.
오늘날의 시낭송은 행사의 구색을 맞추는 정도가 주종을 이룬다. 젊은 낭송가의 유입이 적다는 것도 발전가능성을 저해하는 요인이며 의상 및 퍼포먼스에 지나치게 의존한다는 점 등도 지적되고 있는 문제점들이다.
이러한 현상의 원인이나 문제점을 분석하거나 발전방향을 심층적으로 모색하는 일은 현실적으로 매우 소홀한 실정이다. 여기서 시낭송의 활로를 진지하게 고민하며 모색할 필요가 대두된다.
2. 시낭송의 발전 방향
시낭송은 시낭송에 의거하여 발전하여야 한다. 시에 너무 치우치거나 음악에 너무 치우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뿐만 아니라 의상이나 조명, 퍼포먼스에 너무 의존하는 것도 스스로 경계해야 할 부분이다.
시낭송가들이 우후죽순 격으로 나와서 기성 낭송시를 모방하는 정도에 머문다면 시낭송은 발전할 수 없다. 시낭송가들은 먼저 시에 대한 자기만의 이해와 소화, 자기만의 소리, 다른 낭송가와 구별되는 자기의 낭송법 등을 연구하고 개발하여야 한다.15
전문 학자에 의한 시낭송 이론의 개발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문학, 시, 음운학, 음성학, 음악, 성악, 심리학, 음향악 등의 전문 학자들의 공동 연구가 필요하고 연구 결과를 아우르고 재생산하기 위한 대학의 융합학과의 개설도 필요하다.
현장의 시낭송가와 전문 학자들이 연계하여 시의 기능적 분류와 거기에 따른 차별화된 낭송법의 개발 또한 필요하다. 시낭송의 기능적 분류를 예시한다면 다음과 같이 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① 본질적 기능(치유적 기능) : 시낭송은 낭송가 자신을 치유하는 자기 치유 기능이 있다. 소리를 밖으로 풀어냄으로써 심리적 억압을 푸는 것이다. 시낭송은 청중을 치유하는 기능도 있다.16 바로 이러한 기능 때문에 시낭송치료가 대체의학의 한 분야가 될 가능성이 있으며 전문적, 체계적 견인이 필요하다고 하겠다.17
② 의전적 기능(행사적 기능) : 지금도 여러 가지 행사의 순서에 시낭송이 들어가는 경우가 간혹 있지만 이 부분이 더욱 확대되고 확산될 필요가 있다. 현충일 기념식이나 소녀상 제막식 또는 각종 문단 행사나 문학비 제막식 등에서는 이미 시낭송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그 외의 각종 사회단체 행사나 회사 차원의 행사 등 시낭송이 개척해야 할 분야는 많이 있다고 할 수 있다.
③ 상업적 기능(대중적 기능) : 시낭송도 대중가요와 같이 앨범을 만들어 판매하거나 일회 사용에 대한 저작권료를 받는 풍토도 조성할 필요가 있다. 지금도 앞서가는 시낭송가들은 앨범을 만들어 배포하고 있지만 아직은 시장이 형성되어 있지 않은 관계로 주변에 나누어 주는 정도가 대부분이다.
Ⅴ. 시낭송 치료의 가능성 모색
1. 시낭송 치료의 이론적 근거
마음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동질적인 시낭송이 가장 적합하다.18 따뜻한 마음의 전달을 통해서 차가운 마음이 위로 받아 따뜻해짐으로써 치유 받을 수 있다. 시낭송이 가진 감정적 내용이 듣는 이의 감정을 치료할 수 있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시낭송 치료의 가능성이 자리한다. ‘마음의 치료’라는 의미에서 시낭송 치료는 심리 치료의 일종이 된다고 할 수 있으며 의학적으로는 정신과 치료의 보조적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19
인간의 일상생활에 있어서 감정생활의 대부분은 억압을 받고 있다. 도덕적ㆍ법률적으로, 사회적ㆍ문화적으로, 이해관계와 시샘, 또는 갑질로 인하여 인간의 감정은 끊임없이 억압 받는다. 그러한 억압을 푸는 것이 소리 예술인 음악이며 시낭송이다. 사람들은 시낭송에 공명하면서 깊이 빠져들어 감동하면서 어렴풋이 느껴지는 어떤 운명적인 힘과 접촉하면서 자신을 옭아매고 있는 억압을 풀고 정신적으로 치유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이 감동이다. 감동이란 말 그대로 ‘감정의 움직임’이다. 감정이 움직임으로써 묶인 감정을 푸는 것이다. 시낭송이 바로 그러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시와 음악의 관계를 설파한 공자의 말씀이 있다. 군자는 “시로서 감정을 일으키고 예로서 인격을 세우며 음악으로 완성된다.”20는 명제가 그것이다. 여기서 군자라고 하는 것은 오늘날의 지성인과 같은 의미일 것이다. 시가 일으키는 감정이란 시의 내용이 주는 감동을 말하는 것이고 음악으로 완성된다는 것은 시가 즐거운 소리로 들릴 때 비로소 온전한 마음이 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시의 내용적 흥취를 알고 예의를 갖춘 인격만으로는 지성이 완성되지 않는다는 것, 그러니까 그러한 바탕 위에서 그것들을 음악 위에 얹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지성이 완성된다는 말이다. 환언하면 시낭송이야말로 지성의 최종 단계라는 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여기서도 우리는 시낭송 치료의 근거를 찾을 수 있다. 감정이나 마음이 묶여 억압되어 있는 사람은 아직 불완전한 상태이다. 이것들을 풀고 처음의 완전한 상태로 되돌아가 완성되기 위해서는 음악이 필요하고 시낭송이 필요한 것이다. ‘음악으로 완성된다’는 말을 ‘시낭송으로 마음이 완전해진다’는 말로 바꾸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2. 시낭송 치료의 모델
시낭송 치료라는 개념은 아직 규정되지 않았으며 공식적으로 쓰이는 용어도 아니다. 그러나 시치료21라는 개념이 생성되어 발전되고 있는 것을 보면 시낭송 치료도 가능하다는 생각을 해볼 수 있다. 물론 시치료도 아직 정착되지 못했으며 또한 발전하지도 못하고 있는 한국의 실정에서 시낭송 치료가 조만간 거론되거나 조명 받기는 힘들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는 하나의 시안(試案)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그것은 생산적 논의의 단초를 제공할 수도 있다는 실낱같은 기대에서 연유한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는 시치료의 임상적 모델을 가져와서 시낭송 치료에 접목한다.
(상담실) 시낭송 치료사가 도시의 번화가에 상담실을 열고 찾아오는 내담자를 맞이한다. 두 사람은 편안한 의자에 마주앉아 대화를 나누며 친밀감을 형성한다. 차나 음료수를 마시기도 한다. 이런 과정에서 시낭송 치료사는 내담자의 심리적 억압 상태와 정도를 파악하고 적절한 시낭송 처방을 한다. 내담자는 상담료를 지불하고 다음 내방 일자를 예약한 후 돌아간다. 몇 차례의 이러한 상담 과정을 통하여 시낭송 치료사는 내담자의 변화를 관찰하고 정상으로 회복되었다고 판단되면 상담을 종료한다.
(임상 모델 예시)
(1) 내담자
직장에서는 부당한 해고를 당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사랑했던 여인으로부터도 버림받은 30대 중반의 남자가 있다. 여인은 처음부터 이 남자를 사랑하지 않았으며 다른 남자를 사랑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남자를 짬짬이 만나 주면서 그럭저럭 괜찮은 사이로 지났으며 자기가 다른 남자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감쪽같이 속여 왔다. 이 남자가 직장을 잃고 난 뒤에 비로소 이 여자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고 선언하면서 매몰차게 결별을 선언한 후 떠나 버렸다. 그때부터 자기 비하와 세상에 대한 혐오감 그리고 대인기피증이 생겨 이 남자는 방안에만 틀어박혀 있었다. 그러던 중 친구에게 이끌려 늦은 가을에 시낭송 치료를 받으러 왔다. 그는 지금 삶의 모든 의욕을 상실하고 있다. 수개월간 씻지 않은 채 온 몸에 악취를 풍기면서 거지같은 몰골을 하고 있으면서도 전혀 개의치 않고 있다. 그동안 집안에만 틀어박혀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면서 인터넷 게임에 몰두하던가, 아니면 아무렇게나 누워 멍하니 천정을 쳐다보면서 세상에 대한 증오만 키우고 있었다.22
(2) 치료계획의 설계와 실시
주 2회씩 내원케 하여 시낭송 치료를 하되 전체 치료기간을 8주로 잡는다. 1주를 1회기로 하고 2회기를 1단계로 하여 총 4단계의 시낭송 치료를 시술하되 다른 보조적 방법들을 병행한다.23
① 지지단계(1~2회기)
이 단계의 치료 목표는 내담자의 입장을 지지하면서 내담자로 하여금 마음의 문을 열어 자기의 감정을 표현하도록 한다. 여기에는 고독과 소외를 주제로 하는 시를 시낭송 치료사가 낭송해 둔다. 그런 후에 느낌이 있으면 이야기 해 보라고 한다. 아무 반응이 없을 수도 있다. 집에 가져가서 생각나면 다시 들어보라고 하면서 낭송시의 파일을 내담자에게 준다. 내담자가 이 시의 내용을 자기와 동일시하여 공감한다면 치료효과가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도 좋다. 2회기에 내담자가 따라서 낭송한 시를 가져오게 하여 내담자의 상태변화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 내담자가 가져온 낭송시를 같이 들으면서 치료사가 진지하게 공감해 주어야 한다. 이 단계에서 내담자가 치료사에게 최소한의 신뢰라도 가지면서 단 몇 마디라도 자기의 감정을 표현하게 된다면 치료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② 통각단계(3~4회기)
이 단계의 치료 목표는 내담자의 통찰을 발전시키는 데 있다. 여기에는 쓸쓸함과 허무함을 소재로 하되 긍정적 방향을 취하는 시를 활용한다. 방법은 전 단계와 같다.
내담자가 과거경험을 토대로 하여 실존적 통각을 하도록 하여야 한다. 과거의 구조가 인격 구조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며 그것은 현재 문제와 어떻게 관련되는지를 치료사는 내담자에게 명료하게 해석해 줄 필요가 있다. 이것은 시간의 정서적 측면과 관련이 있다. 직장에서의 부당한 해고와 애인으로부터의 매몰찬 버림받음이 지나간 시간과 노력의 상실이고 그것이 자기 자신을 낙오자로 만들었다고 내담자는 믿고 있지만, 무언가를 잃는 것은 곧 새로운 것을 얻는 것이며, 설사 내일 또한 부질없을 수 있지만 내담자가 붙들어야 할 것은 그래도 내일이라는 생각이 내담자에게 들 수 있도록, 치료의 관심이 모아져야 한다. 집에 있을 때도 시낭송을 흥얼거려 보라고 권유할 수 있다.
③ 행동단계(5~6회기)
이 단계의 치료 목표는 자기 신뢰의 회복과 당당한 의욕을 고취시킴으로서 행동의 변화를 이끌어 내는 데 있다. 여기에는 사랑의 무상성과 항상성, 인간의 본원적 삶의 의지를 주제로 한 시를 활용한다. 방법은 전 단계와 같다.
이 단계에서는 직장의 고용주와 떠나간 여인에게 편지쓰기를 내담자에게 병행하여 시킬 수가 있다. 그리고 그 편지를 찢어서 강물에 흘려보내게 할 수 있다. 그것은 내담자의 자기존엄성의 회복이면서 동시에 지난날에 대한 결별의 의미가 될 수도 있다.
또 하나, 내담자에게 권유해 볼만한 일로는 등산이나 마라톤 등이 있을 수 있다. 세상은 넓고 내담자의 문제는 아주 보잘 것 없는 것이며 내담자 스스로 이제 무언가를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회복하고 성취감을 맛볼 수 있게 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④ 통합단계(7~8회기)
치료의 종결단계인 이 단계의 치료 목표는 지금까지 치료에서 얻은 것을 견고히 하는 데 있다. 여기에는 벗어남과 나아감을 소재로 하는 미래 지향적 시를 활용한다. 방법은 전 단계와 같다.
이 단계에서 사용할 두 편의 시는 지나간 시간의 모든 부담을 벗어 버리고 지난날의 일들을 달관으로 결별함으로써 다시 제 자리를 찾아 새로운 시대를 시작하라는 암시를 주기 위하여 선정한다. 그것은 분열되고 괴멸되어 가던 자아의 재통합을 이루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이 단계에서 치료사는 내담자에게, 미래에 다시 다가올 수 있는 상실, 좌절, 성공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를 물어볼 필요가 있다. 정신의 자기 실행능력으로서의 내담자의 의지력과 매 상황마다 해야 하는 판단과 결단의 잣대가 될 가치관이 어떻게 변모해 있는가를 확인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것은 다음에 있을 또 다른 내담자의 시낭송 치료에 있어서 참고자료가 될 수 있으며 낭송시 선정의 준거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⑤ 첨언
4단계로 설명한 이 부분은 임상적 시낭송 치료의 모델을 설계하는 하나의 예시에 불과하다. 반드시 이러한 단계구분을 하여야 하는 것도 아니고 여기서 제시되고 있는 여러 가지 치료 방법을 이와 똑같이 병행하여야 하는 것도 아니다. 치료사는 다양한 내담자의 문제 상황과 그가 가진 기질 및 성격 등을 고려하여 유연하고도 순발력 있게 그때그때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처방적 치료를 하면 되는 것이다. 여기서의 예시는 시낭송치료 계획을 수립하는 절차와 방법에 대한 이해를 돕는데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조잡하고 치졸함을 무릅쓰고 제시해 본 것에 불과하다.
3. 시낭송 치료의 장점
① 모든 약은 어쩔 수 없는 부작용을 가지고 있다. 물론 임상실험과 약의 개량을 통해서 그 부작용을 많이 낮추긴 하겠지만 근원적으로 부작용이 없는 약은 없다. 그러나 시낭송 치료는 어떠한 부작용도 없는 자연치료이다.
② 처방하는 낭송시에 의하여 치료사와 내담자 사이의 공감각이 형성되고 정서적 체험을 통하여 자연스럽게 치료되는 과정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내담자는 거부감 없이 자발적ㆍ적극적으로 치료에 동참할 수 있다.
4. 시낭송 치료의 문제점
시낭송치료에서는 시적 완성도나 작품성 보다는 내담자의 정서적 체험과 반응을 더욱 중요시해야 한다. 치료효과라는 실용성에 중점을 두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입각점이 반드시 타당하다고 볼 수는 없다. 의학에서는 치료효과가 높더라도 심각한 부작용을 수반하는 약물이라면 사용을 금지한다. 마약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 부분에 있어서 우리는 이러한 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시적 완성도가 낮다고 해서 내담자의 정서적 체험이나 반응이 더 좋게 나온다는 보장이 어떻게 가능한 것인가? 지적 수준이 높은 내담자의 경우에는 완성도가 높은 작품일수록 더 많은 감명을 줄 수 있다는 것은 아닐까?
뿐만이 아니다. 어떤 문제를 가진 사람에게 어떤 낭송시를 들려 줄 것인가 하는 것을 표준화 하는 것이 필요한데 이 일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내과 의사는 만성 위염이 있는 환자에게 먹는 감기약 처방은 하지 않는다. 위염을 악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때 내과 의사는 내복약 대신에 주사를 처방한다. 과연 시낭송 치료사는 내담자의 증세와 개인적 체질적 특성에 따라 각각 다르게 처방할 수 있는 시들을 분류하고 표준화하여 보유하고 있는가? 이것은 거의 불가능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섣부른 시의 처방은 오히려 내담자를 심각한 위기에 몰아넣을 수도 있다. 실연을 하여 고통 받고 있는 사람 중에는 의지력이 강한 사람도 약한 사람도 있을 수 있으며, 실연의 고통이 경미한 사람도 심각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적합하게 처방되지 않은 시낭송치료는 어쩌면 이들에게 더욱 심각한 고통과 회의를 불러 일으켜 자살에까지 이르도록 할지도 모른다.
낭송시에 대한 저작권료가 문제될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낭송시의 저자인 시인으로부터 어느 특정 낭송가가 독점적으로 낭송권을 얻는 방법도 있을 것이고 누구든 1회 낭송에 일정 금액을 지불하는 방법도 있을 수 있다.
5. 해결 방안
(1) 근원적 문제에 대한 해결 방안
① 전문가 양성이 시급하다.
② 기초이론의 정립이 요구된다. 활발한 연구와 연구결과의 축적으로 학문적 체계화를 수립하여야 한다.
③ 낭송치료시의 무분별한 생산이 아니라 체계적 생산이 필요하고 임상적 처방에 있어서 국제적인 표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④ 여러 가지 시낭송 치료의 임상적 모델 개발이 필요하다.
⑤ 내담자의 문제 상황에 따라 치료사가 각각 달리 처방할 수 있는 치료시의 데이터베이스화가 필요하다.
⑥ 충분한 임상실험을 통한 과학적 검증이 필수적이다.
(2) 제도적 문제에 대한 해결 방안
① 시낭송 치료사 자격의 입법화가 필요하다. 자격관리 주체를 민간단체로 할 것인지 국가기관으로 할 것인지도 결정되어야 한다.
② 전문가를 양성할 수 있는 대학 내의 학과 개설이나 민간 차원의 교육 기관이 필요하다.
③ 시낭송치료 연구의 활성화를 위하여 연구비를 집중 배정하는 등 국가적 지원이 필요하다.
④ 시낭송치료를 전문적인 의료행위로 인정하고 관리하기 위한 의료법 개정이 필요하다. 미국처럼 대체의학 제도를 도입하여 거기에 포함시키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 제68회 낙강시제 시선집 『2018 낙동강』, 2018.09.07., 한국문인협회 상주지회, 182~189쪽. 참조. [본문으로]
- http://mhspace.co.kr/b02/7487 [본문으로]
-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knhrose1&logNo=221337652334 MP3 파일로도 제작되었으며 ‘현역시인 자작시 낭송’도 포함되어 있다. [본문으로]
- http://www.jeipoetryrecitation.org/sub/poetry3.php [본문으로]
- http://cafe.daum.net/gonggansi/Axbc/1 [본문으로]
- 시낭송에 취미를 가진 초보자로부터 상당한 경지에 이른 낭송가와 전문 낭송가까지를 추산한 대략적 수치이다. [본문으로]
- http://www.kyobobook.co.kr/search/SearchCommonMain.jsp [본문으로]
- Nicolai Hartmann, Ästhetik(1953).2 Aufl.Berlin 1966.(이하 Ä.로 표기함) S.203~204. 참조/ Nicolai Hartmann, Einführung in die Philosophie. Überarbeitete vom Verfasser genehmigte Nachschrift der Vorlesung im Sommersemester 1949 in Göttingen(Bearbe itung Karl Auerbach),5 Aufl.(이하 Eip.로 표기함) S.194. 참조. [본문으로]
- 본고 Ⅲ-1 참조.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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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ip. 193. [본문으로]
- DDr. Johannes Hessen, Lehrbuch der Philosophie, Bd. 2. (Wertlehre), 2 Aufl. Ernst Reinhardt Verlag München-Basel 1959, S. 234. [본문으로]
- 김주완, 『미와 예술』, 서울:형설출판사, 1994, 101쪽. [본문으로]
- Ä. 357. [본문으로]
- 본고 Ⅲ-6 참조. [본문으로]
- 본고 Ⅲ-1, 2, 3 참조 [본문으로]
- 시낭송 치료의 시안은 Ⅴ에서 논의된다. [본문으로]
- 본고 Ⅲ-2 참조. [본문으로]
- 심리치료는 국내에서 상당히 정착되고 있다. 그러나 2019년 현재 시치료사나 시낭송치료사는 국내에 아직 그 제도가 도입되어 있지 않다. [본문으로]
- 興於詩 立於禮 成於樂(論語 卷8 泰伯-8) [본문으로]
- ‘시치료’(Poetrytherapy)라는 용어는 1950년대 미국에서 처음으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시치료’(Poetry Therapy)라는 명칭을 처음으로 사용한 사람은 미국의 Grifer이다. 그는 시인이자 변호사였고 뉴욕의 Creedmoor State 병원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약사였다. 처음에 그리퍼는 ‘Poem Therapy’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그리퍼는 Leedy라는 심리학자를 만났고, 리디의 제안에 따라 ‘Poetry Therapy’로 명칭을 바꾸어 쓰게 되었다. 둘은 함께 시치료 그룹을 만들었다. 1969년 두 사람을 중심으로 하여 시치료협회(APT)가 설립되면서부터 시치료는 공식적으로 알려졌고, 1971년부터 매년 뉴욕에서 학회가 열리기 시작했다. APT는 1981년에 ‘미국시치료협회’(NAPT)로 확대 되었고 그때부터 매년 미국 전역을 돌아가면서 학회가 열리게 되었다.(Nicholas Mazza 저, 김현희 외 역,『시치료, 이론과 실제』(서울 학지사, 2005), 29~30쪽 참조.) [본문으로]
- 김주완, 「시의 정신치료에 대한 철학적 정초」, 대한철학회, 『철학연구』 제100집, 2006.11. 264쪽. [본문으로]
- 김주완, 같은 논문, 같은 쪽.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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