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 시집 수록 시편/제4시집 오르는 길이 내리는 길이다[2013]

[시] 착시, 울안의 돌배나무 2 / 김주완 [2013.06.04.]

김주완 2013. 6. 5. 10:23


[시]


착시, 울안의 돌배나무 2 / 김주완


황학리 61번지, 처가 곳으로 이주한 십대조 할아버지는 울부터 쌓았다, 산 깊어 횡횡하게 출몰하는 산짐승, 크고 작은 아가리로부터 식솔들을 지키느라 울타리부터 튼튼히 한 것이다, 처음에 돌배나무 밖으로 경계를 지은 것인지 나중에 돌배나무를 패다 심은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돌배나무 그늘에 초당을 짓고 문하생도 없는 서당을 열었다는 구전만 있다, 할아버지는 돌배나무를 세워놓고 강론을 하신 것인가, 울안의 돌배나무는 철이 들면서 자꾸 엄전해졌다, 경전의 말씀들을 묵언으로 다스려 몸집 부풀고 키가 자꾸 컸다, 생을 마친 할아버지는 돌배나무 속으로 들어가 돌배나무가 되었는가, 자손들은 크게 번성하지 못하고 꼬들꼬들 대만 이어가다가 십대손에 이르러 겨우 가지가 벌었다, 지금은 마을 초입, 삼백 년생 돌배나무 안에서 십대조의 기침소리가 난다, 꼬장꼬장한 강설이 새어 나온다, 깡마른 할아버지가 거기 앉아 있다, 삼백 년간의 좌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