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해동문학 2013년 겨울호(통권 84호) 128쪽 수록
석정문학 2013년 제26호 68쪽 수록
그늘의 정체를 보았다 1 / 김주완
회화나무 그늘에서 보았다, 그림자는 어둠이 아니라 목도장 자국인 것을, 머무르지 않는 빛이 땅에 찍어두는 도장, 오래된 도장에는 귀가 떨어져 나간 상처가 있고 회화나무 그늘에는 듬성듬성 얼룩이 있다, 상처 같은 얼룩들이 설렁설렁 옮겨 앉는다, 몸통 큰 그늘의 다리가 짧다, 그러나 아직도 선명하게 살아있어 콩 콩 외발뛰기를 하는 그늘의 태생은 창세기이다,
어머니 품은 그늘져서 아늑했다, 젖내 배인 어머니의 가슴살은 아늘아늘 터서 얼룩졌다, 형에게서 내게로 옮겨온 그늘, 불안한 내 생을 버티어 준 그늘
옮겨가는 것은 그늘이 아니라 그늘의 흔적이다, 생전이든 사후든 어머니의 그늘은 늘 거기에 있었다, 회화나무 그늘처럼 그늘이 그늘이라고 명명된 이유가 그것이다, 그늘의 키가 작아졌다가 길어진다, 흐리거나 비오는 날엔 회화나무 그늘이 사라진다, 젖 뗄 때 가슴에 바른 어머니의 금계랍에선 젖내가 사라졌다, 사라져도 없어진 게 아니다, 그렇게 있는 것이다, 그늘은 나이를 먹지 않는다, 나이테가 없는 그늘의 단면, 아득한 졸음이 거기로 쏟아진다,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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