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2013.11.20. 언령 8집 발표]
말의 유령 / 김주완
촉망받는 여류가 보내온 신간 시집, 찜통에서 갓 쪄낸 찐빵의 팥소처럼 시가 뜨겁다, 급속히 난시로 퇴화하는 시력, 너머로 가물가물 무한 축소되는 활자들, 회화문자처럼 낯선 반추상의 그림들, 고물거리고 있다, 난시難詩가 난시亂視를 재촉한다, 도망치는 시를 쫓아가는데 눈이 아팠다, 왜 종이책의 글자는 작은 것일까
출입이 차단된 숲을 신비라 부른다, 뒤틀린 나무를 은유라 하고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방언이라 칭한다, 접신한 무녀의 푸념에 사람들이 손바닥을 비빈다, 자꾸 절을 한다, 그러다 보면 소름이 돋고 전율이 이는 수가 있다, 미신의 늪은 시야 밖, 신령한 어둠 속에 있다, 거기, 말의 유령들이 떠돈다
축소 지향의 활자와 원방 배회의 시, 젊다고, 신선하다고 방언으로 말하는 사람들, 군맹무상群盲撫象*인가
* 군맹무상(群盲撫象) : 맹인(盲人) 여럿이 코끼리를 만진다는 뜻으로, 사물을 좁은 소견과 주관으로 잘못 판단함을 이르는 말. 열반경에 나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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