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손편지 / 김주완
속주머니에 넣어 온 마음에는 겹겹의 온기가 남아 있다
우편은 믿을 것이 못돼 인편으로 보낸다, 변질이 염려되어 봉하지 않는다, 못난 육필로 써서 전해온 꼭꼭 마름하여 접은 봉투, 허공으로 증발하지 않고 도착했다
읽기가 난해한 내간체 언문에 싸인
잘 마른 엿질금 한 됫박, 누렁호박 한 덩이
어머니의 보자기에는 시큼시큼 누룩 같은
흘림체의 옛 냄새가 동봉되어 있었다
손길을 보내는 것은 정성을 보내는 것
한 코 한 코 손에 못 박히며 뜬 털실 목도리
자정子正 지난 시간
올마다 들앉은 자정姿情이 구구절절 애틋한데
생쑥 냄새 나는 마음결 너무 아려
차마 펼치지 못하지, 추운 목 두르지 못하지
마른 나뭇가지 툭툭 부러지는 겨울 긴 밤, 살아 있는 마음을 산 채로 담아 보내온 어머니의 손편지
달빛 아래 춤추는 달필 아니어도
손끝 닳도록 꼭꼭 눌러 쓴 글발이 명문名文이다
목도리가 손편지다, 속에 온기 가진 구들방이다
'제1~7 시집 수록 시편 > 제4시집 오르는 길이 내리는 길이다[2013]'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 겨울 대숲 / 김주완 [2013.02.19.] (0) | 2013.02.19 |
---|---|
[시] 똬리 2 / 김주완 [2013.02.12.] (0) | 2013.02.13 |
[시] 손의 비밀 2 / 김주완 [2013.01.22.] (0) | 2013.01.26 |
[시] 손의 비밀 1 / 김주완 [2013.01.22.] (0) | 2013.01.26 |
[시] 처음 가는 길 / 김주완 [2013.01.15.] (0) | 2013.01.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