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손의 비밀 2 / 김주완
그는 역한 냄새를 내면서
죽어서도 꿈틀거렸다, 불편한 낮 또는 밤
물줄기를 움켜잡아도 물고기처럼 빠져나가는 분수
푸른 솟구침의 힘찬 기운을 쫓아
나는 늘 아궁이 속에 손을 집어넣었다
자주 화상 입는 손으로 밤늦은 마당에 들어서면
어김없이 엎드려 있는 흑갈색 커다란 두꺼비
음력 오월, 바위 같은 손으로 보리타작을 하는 날은
하얀 전등불 아래
졸참나무 숲에서 별들이 쏟아졌다
그는 다 여문 도토리 같은 실토를 구했고
나는 내가 가꾼 꽃밭의 꽃들을 기억하지 못했다
검은 동굴 속에 사는 자는 색깔의 설렘을 알지 못한다
색맹인 짐승은 울부짖을 줄만 아는 법,
솜이불을 덮어쓰고 아무도 몰래 흐느끼던 어린 시절처럼
나는 손으로 입을 틀어막으며
황토마당처럼 온몸으로 길게 소낙비를 맞았다
침묵은 자존의 성벽이다, 견고한 성문이다
흔들리는 숲에서 아이들이 떨고 있을 것이다
들판에는 제비꽃이 가득가득 피어나고
옛집 윗방엔 쥐가 문설주를 갉고 있었지
맹수가 되어 손으로 손을 잡는 멀쩡한 날들
나는 이제
그의 여자가 아니라 어미로서만 살 것이다
때 되면 부는 바람자락 외면하지 않을 것이다
이미 가을도 지나가 버렸다
생의 척추가 와송臥松처럼 굳어 버린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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