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2016.10.04. 언령 11집 기고]
신身과 신神 / 김주완
산 자가 죽은 자를 싣고 화장장으로 간다 무겁게 지고 온 박피된 생애를 세상 어느 구석에 벗어둔 채 나무토막처럼 꼼짝 못하고 실려 온 신身, 산 자의 훌쩍이는 짧은 기도가 끝나자 미끄럽게 목관을 빨아들이는 화구, 유리벽 너머 아득한 벽의 네모난 철문이 단호하게 닫힌다 산 자는 이내 식당으로 몰려가고 피로한 영정이 기댄 유골함 위 흐릿한 모니터에 화구의 철문이 오래 된 영상처럼 흐늘거린다 한 시간 삼십 분이 지나고 (○ 번 ○○○ 님 화장이 끝났습니다. 유족들은 유골함을 가지고 ○ 번 수골실로 오시기 바랍니다.) 전광판에 한 줄 문장이 뜨고 안내 방송이 나온다 네모난 철문이 열리고 당겨져 나오는 화덕 바닥 아이 주먹만 한 크기의 뼈 몇 덩이와 골분이 조금 깔려 있다 마스크를 하고 검은 옷을 입은 직원 둘이 빗자루와 쓰레받기로 수습하여 분쇄기에 넣는다 하얀 밀가루처럼 바스라진 한 생의 한 줌 종말이 아래로 내려온다 약첩을 접 듯 몇 겹의 화선지에 싼 골분 가루가 유골함에 담겨져 컨베이어벨트를 타고 나온다 가루가 된 신身은 있는데 생을 끌고 온 신神이 보이지 않는다 아무도 모르는 죽은 자가 간 곳 저쪽에 있는 저세상 이쪽과 저쪽 경계를 넘어서는 죽은 자의 분골쇄신 신身과 신神이 갈라서는 이별은 말이 풀어진 한 줄 문장의 휘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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