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한국시> 2011.8월호(통권 268호) 발표
[제6시집]
워터코인/김주완
키워 보라고 아내가 건네주었다 워터코인 몇 줄기, 투명한 유리잔에 담아 수경재배를 시작했다 화병 아래로 힘없이 늘어졌던 긴 줄기들, 햇볕을 받아 허리를 뒤틀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하늘을 향해 잎들을 한껏 펼친다 동그랗게 반짝이는 초록 잎을 가진 그녀는 물동전, 물에 뜨는 동전이다 그러나 나는 물방개의 행차에 일산으로 쓰면 적격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녀의 자리는 보통 거실 테이블이나 침실 탁자 위 유리판이다 유리판 아래로 거꾸로 선 그녀의 팔과 다리가 스멀스멀 벋어가고 있다 유리잔의 물은 쏟아지지 않고 수평의 수면을 도립으로 유지하고 있다 그런 그녀의 사생활은 전라의 상태로 노출된다 하얀 뿌리와 뿌리가 서로 끌어안고 뒤엉키거나 물을 빨아들이는 샅의 은밀한 영상이 말갛게 유리잔 밖으로 전송된다 유리판 아래위로 은밀하게 주고받는 문자나 트윗이 어느 선로에선가 저장되는 그 시간, 그녀는 부끄러움을 마비시켜야 한다 프라이버시를 포기해야 한다 괴물 같은 문명 앞에서 사생활이 낱낱이 백일하에 드러나는 그녀의 생존은 가련하다 그녀의 전라를 들여다보는 나는 어느새 방자한 권력자가 되어 있었다 얼굴이 동전인 그녀의 나신을 보며 낄낄거리는 관음증도 생겨 있었다 다년초인 그녀의 먹음직한 윗몸을 샐러드로 식용해 버릴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녀는 자꾸자꾸 자라오르고 나는 그때마다 잘라 먹으면 될 테니까, 물동전, 물동전 들뜨더니 며칠 사이, 그녀는 작고 앙증맞은 연두색 꽃을 조롱조롱 피우고 있다 나는 돋보기를 쓰고 확대경을 들이대고 그 작은 꽃 속을 들여다본다 음흉하게, 부푼 국부의 흔적을 살피고 있다 나는 이제 사이코가 되어 낯선 도시의 이름 모를 골목에서 객사한 죄의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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