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쉬 1 / 김주완
파리가 장독대에 쉬를 슨다 간장이나 고추장, 된장독에 쉬를 슨다 뒷간이나 거름더미에도 슨다 알로 낳기도 하고 애벌레로 낳기도 한다 쉬는 알이고 애벌레다 애벌레는 구더기다 구더기가 자라서 번데기가 되고 딱딱한 번데기에서 어른파리가 나온다 평균 일 개월 정도 살면서 암컷은 여섯 차례에서 열 차례에 걸쳐 천 개의 쉬를 슨다
어머니는 장독대에서 한 마리씩 쉬를 골라내었다 고물거리는 어린 놈을 숟가락으로 떠내어 바가지에 모았다 장독에 빗물이 들어가면 가시가 난다고 어머니는 믿었다 햇살 따가운 한여름, 며칠씩 계속되는 연례행사였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글까 가시를 골라내고 퍼 온 고추장과 된장을 버무린 쌈장을 상추에 싸거나 풋고추에 찍어 우리 식구는 물에 만 보리밥을 달게 먹었다
뿡뿡 보리방귀를 뀌다가 측중에 들어간다 거기 똑같은 놈들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하얗게 화장을 한 얼굴로 긴 머리카락을 발에 걸고 헤아리고 있는 젊은 변소각시가 놀라지 않도록 발판 위의 구더기를 살며시 발로 훑어 낸다 그리고 두 다리를 알맞게 벌리고 발판 위에 쭈그리고 앉는다 똥덩이 하나 툭 떨어지면 하얀 구더기가 바글바글 몰려들어 파먹었다 큰 덩어리가 이내 흔적 없이 사라져 버린다 먹을 만큼 먹은 놈들은 벽으로 자욱이 기어오르고 있었다 초가지붕 아래 얼기설기 엮인 서까래에서 살찐 몇 놈은 투둑투둑 떨어지기도 했다 벌써 파리가 빠져나간 빈껍데기, 딱딱한 반쪽짜리 번데기가 다닥다닥 붙은 내벽과 똥항아리, 자수정 빼곡히 박아놓은 건식 사우나 부스 같았던 그 뒷간
약삭빠르고 빈틈없는 똥파리 몇 마리가 저공비행으로 아래 위를 선회하는 사이로 내 유년의 1950년대는 지나가고 있었다 쉬와 똥파리 사이, 장독대의 가시와 뒷간의 구더기 사이, 질긴 헌데와 마른버짐을 달고 보낸 그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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