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집 12 / 김주완
― 집 이름
젊은 시절 들판 가운데 집 하나 지어놓고 집 이름을 양수재 暘櫢齋라고 지었다 지어주는 사람도 없고 해서 손수 지었다 해 돋아나는 곳의 나무 무성한 집이라는 뜻이다 현판 하나 서각으로 만들어 몇 번의 이사를 하면서도 들고 다녔다 남들에게는 서재 이름이라고 하는데 어쩌다 당호堂號가 되어 버렸다
나이 육십이 다 되어갈 즈음, 사이버에서 닉네임을 만들다가 초와艸窩라는 이름을 짓게 되었다 역시 직접 지었다 풀로 만든 움집이란 뜻이다 뜻도 좋고 글씨꼴이 예뻐서 그렇게 지은 것이다 어떻게 하다 보니 간혹 아호雅號로 쓰고 있다 물론 내놓고 쓰지는 않는다
해 돋아나는 곳의 나무 무성한 집이 풀로 만든 움집이 되어 버린 것이다 햇볕을 잘 받아 나무는 무성하게 자라지만 무성한 나무에 가려 집이 잘 보이지 않는 형국이다 풀로 엮은 움집은 낮게 엎드려 있을 거니까 잘 보이지 않는 것이 당연지사다 나아가 내놓고 보일만한 집도 아니지 않은가
낙동강 가에서, 풀로 만든 움집은 머잖아 쇠락할 것이고 무성한 나무는 보다 오래 살아갈 것이다 양수재의 초와라는 사람, 이름이라도 제대로 남을까 영 아닐 것 같다 호적에 올려놓고 평생을 써온 성명 석 자도 자꾸 퇴색하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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