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 시집 수록 시편/제4시집 오르는 길이 내리는 길이다[2013]

[시] 집 13 _ 구름의 집 / 김주완 [2011.05.24.]

김주완 2011. 5. 26. 13:33

[시]


집 13 / 김주완

                                                            ― 구름의 집


그 집은 높고 가볍다 아마 새의 뼈로 골조를 하고 날개깃으로 벽과 지붕, 인테리어를 했으리라 그 집은 공중을 둥둥 떠다닌다 서소棲巢 같은 나무 위의 집은 이 집에 비하면 말 그대로 약과다 언제 지진이 나든 쓰나미가 오든 오불관언이다 허리케인이나 토네이도가 강타해도 미동을 않는다 담벼락의 덩굴장미꽃쯤으로 생각하면 그만이다 그 집은 정해진 자리가 없다 바람 부는 대로 떠다닌다 대륙을 횡단하는 이동주택 트럭이나 캠핑카보다 이동이 더 자유롭다 충돌이나 추돌, 추락의 위험이 없다 기류의 흐름에 따라 전자동 운전 체계가 작동된다 그림자는 굳이 달고 다니지 않는다 앞세우거나 밟고 다니지도 않는다 생기면 생기는 대로 그냥 둔다 그림자의 집은 저 아래 있는 다른 집이다 구름의 집은 무한가변의 설계로 지어졌을 것이다 집의 외양이 수시로 바뀐다 일출이나 일몰 때에는 바로크양식의 베르사유 궁전이 된다 햇빛 쨍쨍한 여름 낮에는 로마네스크나 고딕의 건축양식으로 바뀌기도 한다 어떨 땐 러시아풍의 건축양식과 한국 건축 양식이 혼합된 웅장하면서도 아담한 풍채를 보이기도 한다 여객기가 창문과 내벽을 뚫고 지나가고 전투기가 집의 바닥에서 천정까지 구멍을 내기도 하지만 별로 신경을 안 쓴다 금세 복구가 된다 구름의 집에서도 새끼가 태어나고, 장성하면 분가하여 떠난다 떠나도 아주 떠나는 것은 아니다 외로우면 언제라도 되돌아와 합가하면 그만이다 부양이나 양육의 고된 과업이 없다 집이 무거워지면 빗방울로 투둑투둑 떨어뜨리면 그만이다 간혹 어쩌다가 생기는 일곱 빛깔 무지개는 아취형의 공중 기둥이 되어 지상으로 뿌리를 내리기도 한다 하늘이 꽁꽁 얼어붙은 겨울엔 무거워진 집의 일부를 눈덩이로 펑펑 내려 쏟는다 땅에 사는 아랫것들의 하는 짓이 영 맘에 들지 않으면 우박을 무더기로 퍼붓는 심술을 부리기도 한다 우주왕복선이 대기권에 진입할 때나, 은하에 가설된 도시경전철로 궤도차가 지나갈 때면 소음이 좀 거슬리기는 하지만 아직은 참을 만하다 초등학교 운동회라도 하는 날이면 정원의 사탕나무 가지 몇 개 꺾어 내려 보낸다 빙빙 돌아가는 원통에서 걷어내는 솜사탕을 한입 베어 무는 아이들은 처음부터 그 집 주인들이다 청백으로 나누어 개선문으로 들어서는 그들의 마음은 모두 그 집에서 파종한 것들이다 이 집에서도 간혹 부부싸움이 일어난다 이 집 식구들이 얼굴을 찌푸리면 세상이 조금 어둑해진다 우레 치는 소리가 담장을 넘는다 그러나 곧 평온해진다 아무리 이재에 밝은 투기꾼이라도 이 집을 계약하거나 전매할 수가 없다 지상의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더라도, 아등바등해 봐야 결국 아래에 묶여 사는 너희의 일, 무상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 집은 다듬지 않은 무위의 통나무로 지은 노자의 집이거나 신인神人이 소요하는 장자의 집쯤 될 것 같다 그 집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진다 무욕한 넋들만 사는지도 모른다 그 집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