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2011.10.25. 대구시협 20주년 자선대표시선 『대구, 시의 불꽃』, 104쪽 발표>
깍지 4 / 김주완
너의 왼손과 나의 오른손 열 손가락을 서로 엇갈리게 바짝 끼워 잡았다 지긋이 힘을 주면서 우리 사이의 거리를 밀어냈다 꼼짝없이 하나로 밀착된 팔을 흔들면서 우리는 어지러운 풀숲을 헤쳐 나갔다 열병대오의 행진처럼 일사불란하게 밀어낸 허공 위를 나는 듯이 걸었다 정말 그렇게 알았다 편대를 이탈한 기러기 두 마리 바람을 안고 끼룩끼룩 울면서 노을을 비껴 들판 끝으로 날아갔다 사주 적은 색 바랜 종이엔 부부운이 없다고 적혀 있었다 그랬던가 했다 새는 나뭇가지와 발깍지를 낀 채 사냥할 벌레를 살피고 시인은 세상과 어깨동무를 하듯 깍지다리로 묵상에 들어 있다 수도자는 다섯 개의 손가락과 다섯 개의 손가락 사이의 어둠을 움켜잡으며 빛을 간구하는 손깍지를 끼고 고개를 숙였다 꺾인 갈대 같다 어둔 밤바다에서 각자의 생애를 건너는 풍경은 엑스선 영상처럼 앙상하고 숙연하다 연리지는 서로의 몸속으로 들어가 푸른 피를 섞어 몸깍지를 만든다 잡초는 뿌리와 뿌리를 부둥켜안고 발본을 막아낸다 고구려 고분 벽화에 박혀있는 비늘갑옷 철편에 검은 녹이 슬어 있다 깍지의 풍화작용이다 효와 통한이 깍지 낀 수원화성엔 계몽군주 정조의 왕도정치 일념이 외축내탁의 축성법으로 역사의 부침을 넘어서고 있다 허공이 지심을 뚫고 들어가 사방으로 얽히고설킨 동굴들, 천天의 뿌리가 지地의 살 속으로 벋어가 만년을 해로하는 손깍지인가 멀고 길게 골몰하는 깍지들 느슨하면서도 단단하다 허물어지면서 잘도 버티고 있다 깍지는 풀림으로 가는 슬픈 길이다 모든 깍지는 처음도 끝도 없는 둥글고 긴 길 위에서 눈물겨운 새순으로 시작된 어중간한 출발임을 안다 세상에서 가장 연약한 것들만이 깍지 끼는 것이 아니다 소망이 만드는 질서, 생명이 생명으로 이어지는 매듭이 깍지임을 안다 바람과 나무의 변증법이라고 할까 잘게 쪼갠 왕골 줄기로 날과 골을 깍지 끼워 난초석을 짜는 바디질을 아직도 누가 하고 있다 깍지광 하나 마련해야겠다 응력의 해석학을 수습하고 싶다 저녁이 오기 전에 새 이름 하나 명명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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