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2016.10.10. 경북문단 기고]
집 6 / 김주완
집에서 나와 집으로 간다 둥지에서 나온 새는 숲에서 벌레를 잡아 다시 둥지로 돌아간다 거기 쫑긋쫑긋 입 벌리고 있는 새끼들이 있다 양육은 집에서 이루어진다 털북숭이 새끼들이 여린 부리로 깨고 나온 빈 껍질은 이미 버려진 옛집, 자라면 버리고 떠날 그 둥지 또한 지나간 옛집이 될 것이다 강에 떠 있는 지붕 덮인 배는 사마르족의 수상가옥과 다르지 않다 교역을 하며 물 위에서 물 위로 흘러간다 거기서도 아이들이 태어나고 자란다 어미가 있어 양육은 집에서 이루어진다 집은 어미다 어미가 집이다 집 속에 어미가 있고 어미 속에 집이 있다 새끼들은 자라서 어미의 집을 떠나 새로운 지붕배로 옮겨갈 것이다 몸이 자라면 집이 작아질 것이므로, 크는 곳이 집이라 살아있는 모든 것은 집에서 자라 밖으로 나온다 매미처럼 껍질을 벗고 나와야 제 소리를 내며 제대로 날 수가 있다. 헌집을 버리고 나와야 더 큰 새집으로 들 수 있다 그러나 떠난 집으로는 돌아가지 못한다 돌아갈 수 있는 집은 아직 완전히 떠난 집이 아니다 옛집은 돌아갈 수 없는 곳, 마음으로만 그리워하며 자주 뒤돌아보는 곳, 고향같이, 고향이 집이고 집이 고향이다 어쩌다 귀거래사를 부르며 고향으로 돌아가 본들 거기에 고향은 없다 산도 들판도 시냇물도 다르고 정겹던 옛 사람들이 없다 남아있는 사람들은 소나무 껍질처럼 굳어져 있다 환영하는 사람도 없다 예수도 자신의 고향에서 환영받지 못했다 옛집으로 돌아가서는 안 되는 것, 사마귀처럼 맷돼지처럼 새집으로 새집으로 옮겨 가야만 하는 법, 그러다 기력이 쇠하거나 시든 꽃잎처럼 온몸이 무거워지면 몸 눕힐 그 곳이 바로 마지막 그의 집이 되리라 마지막 집은 어미의, 어미의 어미가 떠나온 처음의 집이다 생은 집에서 나와 집으로 가는 길, 집으로 가는 길은 되돌아가는 길이다 물이 되어 바람이 되어 흔적 없이 사라지는 일이다 허공의 집에서 왔으므로 허공의 집으로 돌아가는 일이다 그러나 남은 집은 여전히 남아, 무참히 쇠락해 가면서도 누가 들어와 거주해 주기를 기다린다 잠시라도 거처로 삼아 주기를 바란다 집은 침묵하는 수용성이다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포용성이다 집 나간 탕자도 끝내 돌아오는 집 우리는 모두 집에서 나와 집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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