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 시집 수록 시편/제3시집 엘리베이터 안의 20초[1994]

떠오르는 저 편 3 / 김주완

김주완 2011. 3. 15. 12:35


[제3시집『엘리베이터 안의 20초』(1994)]


   떠오르는 저 편 3 / 김주완



우리

그대로 있자.

다가서지도 물러나지도 말며

그냥 그대로 있자.

가슴 열면 까마득한 창공

우리의 자리가 면도날인 한,

인륜의 두터운 그늘 아래

한 다발의 환상이 시들고

설사,

남은 뼈들조차 흩어져 간다 하더라도

안타까이 부르지 말자.

눈물 서러이 도는 대로

가슴 속 불길 다둑이며

이만큼 떨어져서 둘로

남아 있자.

우리가

사랑할 수 있는 것은 거리

뿐이거니

뒤로부터 읽어서 알자.

누구든 결코 하나 될 수 없음을

거꾸로 읽으면 처절히

아느니,

요구할 무엇도 없이

미워할 무엇도 없이

우리

그대로 있자

그냥 그대로 지금으로 있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