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 시집 수록 시편/제3시집 엘리베이터 안의 20초[1994]

떠오르는 저 편 1 / 김주완

김주완 2011. 3. 15. 12:38


[제3시집『엘리베이터 안의 20초』(1994)]


   떠오르는 저 편 1 / 김주완



밤 두시의 적도에서

바랜 양피지를 벗기면

거기

웅크린 어둠이 나오곤 한다.


어둠 속에서

앓는 자작나무 한 그루

거기 붉은

그림으로 걸려 있다.


혼곤한 지상의 잠을 깨우는

그대 파열하는 신음의 파편,

절망하면서 저항하면서

눈물이 되는

우리들 소유는 무겁다.


벗기고 벗기면 마침내 빈

무한후퇴의 적막,

그리고 또 한 나절의 기도,

들어서면 들어설수록

눈 뜨는 점령지의 의식 한 가닥

흉용한 모습 그러나 허전하다.


어둠과 어둠 사이쯤 혹은

시간의 능선 저쪽에서

연기처럼 피는

말씀의 냄새 눈이 아리고

꽃은 언제 피는가,

자작나무 껍질 안에서 밤새우는

방황의 주검만 바람 앞에 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