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 시집 수록 시편/제3시집 엘리베이터 안의 20초[1994]

떠오르는 저 편 15 / 김주완

김주완 2011. 3. 14. 11:56


[제3시집『엘리베이터 안의 20초』(1994)]


   떠오르는 저 편 15 / 김주완



우리는 모두 기호가 되고 싶다.

그럴듯한 모양으로 나서는

삼각형이거나 사각형이거나

혹은 원형이거나

아니면 곡선이거나 직선이거나 점이거나

그것도 아니면 숫자이거나

아무튼 가장 분명하고 완전한

형태로 나타나고 싶다.


그러나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아직은

내놓을 수 없는 것

그러면서도 가장 절실한

속의 것

바로 나인 또는 너인

그러한 의미 하나

기호 속에 숨겨두고 싶다.


가장 분명하고 완전한

표시이면서

그러나 표시 없는 표시가 되고 싶다.


우리는 모두 부질없는 기호가 되어

기호를 매장함으로써

은유의 그늘에서 벗어나는

꼭 그만큼 자꾸

또 하나의 기호가 되어

그 속에 갇히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