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 시집 수록 시편/제3시집 엘리베이터 안의 20초[1994]

벌판에는 바람이 / 김주완

김주완 2011. 3. 14. 11:19


[제3시집『엘리베이터 안의 20초』(1994)]


   벌판에는 바람이 / 김주완



벌판에는 바람이 불어요.

바람의 방향을 따라서

뜬 구름이 몰려다니고 있어요.

소리의 물줄기가 어지러이 흐르고

몸과 몸을 부딪쳐 맹목의 수목들이

사생결단을 하고 있어요.

바람의 칼날에 넋은 넘어지고 있어요.

갈대밭에서 나온 미풍이 숨 죽여 자진하고

부서지는 흙들의 노래가

산을 옮겨가고 있어요.

쓰러지는 풀들은 쓰러지는 슬기로

바람을 피하고

온전한 뿌리를 지키고 있어요.

벌판에는 바람이 불어요.

바람의 방향을 따라서

번뜩이는 눈물이 공중을 떠 다녀요.

자꾸 서두르고 있어요.

바다인 듯한 바다가 정작은

바다가 아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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