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 시집 수록 시편/제3시집 엘리베이터 안의 20초[1994]

잊혀진다는 것 / 김주완

김주완 2011. 3. 14. 11:08


[제3시집『엘리베이터 안의 20초』(1994)]


   잊혀진다는 것 / 김주완



잊혀진다는 것이 더 이상

슬픔일 수는 없다,

그것은 사라지는 한 점 바람의 얼굴이거나

혹은 텅텅 비워내는 맑고 맑은

몸짓이거나

순수로 돌아가는 외길일 뿐이다,

밤을 지난 잿불로 묵은

흔적을 소리 없이 날리고 맞이하는

어릿한 아침의 새 빛

신비한 생명의 탄생일뿐이다,

나무가 잎을 떨구듯

시간의 잔해를 내치며

어지러운 관심을 벗어나

잊혀지고 싶다,

텅텅 비움으로써 설레이는

처음의 그 곳으로 돌아가

땅 깊이 매장되고 싶다,

결코 슬픔일 수 없는 잊혀짐으로

눈 뜬 이제부터 다시금

눈 감으며 오래

엎드려 깊이깊이 잦아들고 싶다,

우리는 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