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시집『엘리베이터 안의 20초』(1994)]
잊혀진다는 것 / 김주완
잊혀진다는 것이 더 이상
슬픔일 수는 없다,
그것은 사라지는 한 점 바람의 얼굴이거나
혹은 텅텅 비워내는 맑고 맑은
몸짓이거나
순수로 돌아가는 외길일 뿐이다,
밤을 지난 잿불로 묵은
흔적을 소리 없이 날리고 맞이하는
어릿한 아침의 새 빛
신비한 생명의 탄생일뿐이다,
나무가 잎을 떨구듯
시간의 잔해를 내치며
어지러운 관심을 벗어나
잊혀지고 싶다,
텅텅 비움으로써 설레이는
처음의 그 곳으로 돌아가
땅 깊이 매장되고 싶다,
결코 슬픔일 수 없는 잊혀짐으로
눈 뜬 이제부터 다시금
눈 감으며 오래
엎드려 깊이깊이 잦아들고 싶다,
우리는 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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