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2 2

<산문> 왜관 첨상(瞻想)/김주완

왜관 첨상(瞻想) 김주완 ○ 프롤로그 이 글은 왜관에 대한 술회이다. 소설이나 기록이 아니다. 주장이나 논증도 아니다. 다만 나의 기억과 회상 그리고 가벼운 상념(想念)을 따라가며 서술하는 작은 소묘(素描)이다. 그러므로 이 글은 주관적이고 상대적이다. 누구든지 얼마든지 다른 의견을 말할 수 있고 그것은 그들의 서술 지평에서는 전적으로 옳을 것이다. 따라서 어떠한 종류의 토론이나 논쟁에 대해서도 나는 미리 문을 닫는다.이 글의 시간축은 내가 태어난 1949년부터 현재인 2024년까지 75년 동안이며 공간축은 나의 출생지인 왜관읍과 칠곡군 일원이다. ○ 아름다운 칠곡 왜관은 1914년 이래 칠곡군의 군청 소재지이다. 행정구역 안의 8개 읍면 가운데 제일의 위상을 아직은 지키고 있다. 그러나 칠곡군은 197..

<시> 청녀/김인숙

청녀(靑女)* / 김인숙  청녀가 오는 아침이면 하얀 면도날이 천지만물에 곤두선다 녹고 싶었지만 녹여 주는 자가 없어 간혹 한여름 냉동고 인부의 눈썹 위에도 앉는 청녀 처음을 처음으로 지키는 것을 미덕으로 아는청녀는 얼음 서린 표정을 보전한다사람들은 웃고 떠들고 또 잊어버리면서날마다 변하고 바꾸면서 사는데 살아 있지 않은 자는 살아 있지 않으므로잠 자지 않고유리창 위 꽃잎으로 쩍쩍 피면서청녀는 살아있는 주검으로 꼿꼿하다 떠나가는 가을을 얼리고 사람들을 얼리지만눈처럼 덮거나 눕히는 것이 아니라선 채로 하얗게 사람이 사람을 증거케 한다 청녀는 가시가 아니지만 가시가 되기도 하여 지혜로운 자는 함부로 웃지 않아서 높은 방석을 얻고 청녀를 두려워하는 자는 복이 있으나 어리석은 자는 웃을 때를 몰라 가시에 찔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