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 시 해설/영상시

[스크랩] 자작나무 1

김주완 2011. 3. 18. 22:51

자작나무 1 초와 / 김주완 초봄의 자작나무 숲에 가보아라 널려진 화선지에 글들이 빽빽하다 겨우내 곧은 손 녹여가며 쓰고 또 쓴 바람의 말씀들이 스멀스멀 살아나고 있다 지상의 슬픔을 잡아먹는 글자들의 모습을 보면 8만 4천 번뇌는 말씀의 식량임을 안다 누가 파지破紙를 찢는지 숲속에서는 자작나무 껍질의 비명도 들린다 그러나 그 껍질로 싸맨 시신은 나무토막처럼 기척이 없다 만지면 부서질 듯 바삭바삭하게 미라가 된 삶이 땅으로 수북이 쌓여있다 옹이 하나 없는 황백색의 깨끗하고 고른 속살을 차마 만질 수가 없어 손에 못이 박히도록 그대 이름 파서 새긴 목판각엔 천년이 지나도 물기가 들지 않고 곰팡이도 피지 않는다 단단한 침묵에 싸늘하게 절은 것이다 드문드문 연어와 송어를 건져 올리며 미끄러지듯 떠가는 화피선樺皮船 한 척이 울컥 쏟아지는 눈물처럼 숲 위로 흘러간다 어렴풋이 자작나무 숲을 떠나는 초봄의 뒤태가 애처롭고 가냘프다

출처 : 칠곡사랑모임
글쓴이 : 라온제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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