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선주문학』 제8집(1989.07.)에 발표하였음.
[詩論]
시, 객체화한 정신
김주완
1) “시란 무엇인가?”
이것은 시의 본질에 대한 물음이다. 여기에는 시의 존재가 전제되어 있다. 시의 “있음”이 없다면 “무엇인가?”도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시의 존재해명은 본질해명의 선결문제이다. 시의 있기 방식과 구조(전통적 시의 그것이건 현대적 시의 그것이건 간에)가 밝혀지면 시가 무엇이라는 것이 저절로 해결된다. 시는 존재일반의 범주 위에 서 있고, 시의 본질은 시의 존재의 한 부분이다.
2) 총체성으로서의 시는 정서가 아니라 정신이다. 서정이나 정서 혹은 감성으로 일컬어져 왔던 그것들은 시에 이르는 통로이며 외모다. 시는 정서를 딛고 선 정신이다. 객체화한 정신이다.
한 시인이 일정한 세계 내의 생존자인 한 세계와 시인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연관에 있다. 시인은 상황과 환경의 영향을 받으며, 또한 이를 조금씩 변혁한다. 주관적 정신(개인정신)과 객관적 정신(시대정신)의 관계이다. N·하르트만은 여기에 객체화한 정신을 추가하여 정신의 3항을 설정한다. 주관적 정신이 객관적 정신에서 섭취한 어떤 내용을 일정한(언어라는) 매재(질료)속에 고정된 형태로 표현한 것이 객체화한 정신이며, 예술작품(시)이다.
시는 시인을 떠나서 자립하고, 시인의 정신도 시인을 떠나 존속한다. 시속에 담긴 객체화한 정신은 감성이라는 방법적 통로를 통하여 독자에게 와 닿는다. 그것도 감상과 관조능력을 가졌을 뿐 아니라 실제로 감상에 착수하고 있는 독자에 한해서 말이다.
이와 같이, 다른 산 정신에 의해 시는 각광받기도 하고 망각되기도 하면서, 시인의 일생과는 다른 일생을 살아간다.
3) 시는 객관이고 대상이다. 예술의 영역에서 생각되는 창작·작품·감상이라는 3항 중, 창작과 감상은 작용으로서 주관의 문제이고, 그냥 있을 뿐이기만 한 작품은 대상으로서 객관의 문제다. 그러나 그것도 볼 수 있는 눈에 대해서만 객관적 대상이 된다. 따라서 시는 자체존재가 아니라 대상존재이다. 인식대상이 아니라 감상대상일 뿐이다.
4) 대상으로서의 모든 예술작품은 전경과 배경이라는 이중구조로 형성되어 있다. 지금까지 많이 쓰여온 표상과 실재라는 말과 맞먹는 용어다. 그러나 보다 명료한 개념이다. 전경은 예술의 분야가 다름에 따라서 석재, 금속, 색채, 말, 소리 등의 질료의 지속이지만, 배경은 질료 속에 고정시켜진 창작자의 정신적 내용이다. 시의 전경은 언어이며 배경은 시인의 정신이다. 전경은 실사적(질료적·감상적으로 생멸하며 작용하고 있음)이지만 배경은 비실사적이다.
시의 감동은 배경이 전경에 현상하는 데 있다. 현상이란, 작품 속에 고정화된 시인의 정신적 내용이 감성적 질료 속에 나타나는 바로 그것이다. 전경과 배경의 성충관계에서, 전경은 하나의 층이고 배경은 여러 개의 층이다. 그러므로 좋은 시일수록 참다운 내용은 훨씬 더 깊은 배경으로 들어간 곳에 있다.
5) 시작품의 배경을 중첩시키기, 보다 많은 계층을 질서지우기, 그리하여 높은 직관성과 구체성에 도달하기, 이것들이 시작업에 임하는 시인이 할 일이다. 이 일에 사용되는 질료가 언어이다.
언어. 하이데거는 <존재의 집>이라고 하고, 하르트만은 <의미의 의상>이라고 한다. 다같이 존재론에 지반을 두지만, 주관적 신비주의와 객관적 과학주의의 상반된 입장에서 보여주는 이들의 견해가 시사하는 바는 사뭇 크다.
어쨌든 시인은 언어로서 언어 이상을 말하고, 그것이 아니면 말할 수 없는 것을 언표하므로서 투명성을 획득한다. 시인은 가늠 할 수 없는 것을 이에 못지 않게 가늠할 수 없는 감성적인 것을 통하여 제공한다. 언어의 한계를 초월하므로써 세계의 한계를 초월한다. 시인은 세계의 창조자이며 확대자이다.
6) 세계를 직관하고 해석하는 데서 시와 철학은 유사성을 가진다. 그러나 철학은 설명하고 시는 묘사한다. 철학은 비직관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을 사용하고 시는 직관적이고 구체적인 사물의 표현으로 형상이 나타나게 한다. 이성에 호소하는 철학은 내용이 강조되고, 감정에 호소하는 시에서는 내용과 형식이 동일하게 강조된다. 알레고리와 상징은 시의 전유물이다. 옷을 벗기는 작업으로서 철학은 삭막하고, 옷을 입히는 작업으로서 시는 풍요하다. 그러므로 시는 철학을 포괄한다.
7) 새로운 시는 곧 좋은 시라는 등식은 판단착오이다. 모든 새것이 묵은 것보다 반드시 나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느 시대건 실험적 작업은 앞서 간다. 실험정신을 높이 사는 것은, 그 성공을 예상해서가 아니라, 어려운 길을 가는 노고를 생각해서이다.
시의 해체, 전통시의 파괴, 그것이 있어도 좋은 것은 시의 범주 내에서의 일이다. 범주를 넘어서면 시 아닌 것이 되고, 그 때 그러한 작업은 아무런 의의도 가질 수가 없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시를 쓰는 자만이 좋은 시도 쓸 수가 있다. 그러므로 보다 중요한 것은 어쨌든 시를 쓴다는 바로 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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