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사회=21세기를 앞두고 인류는 지금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가고 있으며, 또어디로 가야하는가라는 총체적 고민 앞에 놓여 있습니다. 우리 민족은 이러한세계사적인 문제와 함께 민족사의 고뇌도 함께 안고 있습니다.
한반도가 강대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분단이라는 방식으로 세계체제에 재편됨으로써 우리 민족은 세계사의 모순이 첨예하게 대립되는 최전선에서 숱한 아픔을겪어야 했습니다. 분단 조국의 통일문제는 우리 민족의 지상과제일 뿐만 아니라 탈냉전이라는 세계사적 과제를 푸는 열쇠라고 생각됩니다. 이러한 민족적소명인 통일문제를 내걸고 철학자들이 `통일시대의 철학'이라는 주제로 국제학술발표대회를 개최하게된 배경과 의의부터 짚어 보겠습니다.
▶ 金道宗=우리나라의 통일논의는 두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정부의 통일론을 뒷받침하는 것입니다. 그 이외의 것은 불허하거나 금기시하는 것이죠. 다른 한편에서는 논의라기 보다는 열망이라고 해야할 감상적 통일론이있습니다. 철학계에서는 주체사상을 비판하는 정도에 머물렀습니다. 이제 정치경제 사회 문화 전반의 토대로서의 철학적 이념과 원리에 대해 문제제기를 할시기라고 생각합니다. 구체적이고 공개적인 방법으로 총체적인 통일의 이념을모색해야 합니다.
▶ 金柱完=종래의 통일논의는 통일로 가는 방안을 찾는데 급급했었다는 느낌을받습니다. 철학은 지나간 것의 반성과 함께 시대의 아들로서 현실과 맞서는 이중성을 가진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통일논의 전체를 철학적 관점에서 되돌아보고 모든 통일논의에 밑바탕에 철학이 튼튼히 자리잡도록 해야합니다.
▶ 사회=서양의 건강(health)은 전체(whole)라는 단어와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따라서 온전한 것이 건강한 것이라면 찢어진 것은 하나의 질병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분단의 아픔이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한반도를 냉전의 고도(孤島), 냉전의 박물관이라 하지 않습니까. 통일로 가는 정확한 길을 찾기 위해서는 통일을 가로막는 세력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구분하는 작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金道宗=어떤 사람은 통일연합세력이 분단연합세력을 압도할 때 통일의 길이열린다고 합니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열강들은 `분단의 안정적 상태'를 평화로 간주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 金柱完=정권유지를 기본으로 하는 집권자들의 한계에 열강들의 이해득실이영합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70년대의 남북조절위나 90년대의 남북기본합의서는 분명 주목할만한 성과였지만 그 이면에서 외세는 외세대로 정권은정권대로 통일문제를 이용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 사회=통일은 한 쪽의 다른 쪽에 대한 배척이나 거부로 나타나서는 안됩니다. 문화적 통일의 철학적 원리로 `민족이익 지상주의'를 제시한 金强一 교수님에게 북한의 실상과 이같은 개념의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 金强一=민족이란 일반적으로 다른 민족과 대립될 때 쓰는 개념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 대두되는 문제는 우리 자체의 문제라는데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민족의 이익이 뭔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남북 정부가 정치 군사적 명분에 얽매여 오도 가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때 민족의 이익을 우선하자는 입장에서 우회적인 방법으로 문화적인 통일 원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북한의 양식난(식량난)은 상상을 뛰어넘는 것입니다. 아무런 전제조건 없이 대량의 식량원조가 필요한 때입니다. 북한 주민들도 남한쌀이 들어오고 있다는것을 알고 있습니다. 남한 쌀을 먹으면서 남한을 욕할 수 있겠습니까.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는 `굶어죽을 바에야 싸우다 죽자'는 생각이 팽배해가고 있습니다. 북한 정권이 이를 잘못 이용한다면 그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한 것입니다.
▶ 사회=북한 쌀 원조 회담이나 4자회담이 지지부진한 가장 큰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 金强一=북한은 남한 정부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고, 남한은 북한이 모든 힘을 전쟁에 쏟고 있다고만 생각하는 게 아닐까요. 그러나 10년 뒤를 생각해봅시다. 그때쯤이면 북경이 기침을 하면 서울이 감기에 든다는 소리가 현실로 다가올지도 모릅니다. 한반도 주변국들의 국력이 일취월장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북한은 국력을 소모하고 있지요. 그래서 저는 10년내에남북한이 통일을 이루지 못한다면 영원히 강대국의 각축장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 사회=통일은 물리적 결합이 아니라 화학적 결합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남북한의 정치 경제적 통일도 화학적이어야 하고, 사회문화의 제영역도 화학적으로 통일되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통일시대를 맞이하여 건강한 새로운감성의 예술적 승화가 필요하리라 봅니다. 우리는 어떠한 통일시대의 예술을모색해야 할까요.
▶ 金柱完=통일시대의 예술은 조건없는 개방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통일 이전서독은 자신들의 극단(劇團)은 동독으로 들어가지 못하지만 동독의 극단을 불러들이고 심지어 동독 극단의 세계 진출을 지원했다지 않습니까.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은 남북한간의 예술적 이질감이 심각한 수준이고 특히 정치적 통일논의가 예술부문의 교류까지 가로막고 있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북한은 주체사실주의라는 틀에 묶여있는 반면 만국박람회처럼 북한을 제외한 모든 나라의 문화를받아들여 잡탕의 외래문화가 판치는 것이 남한의 현실입니다.
▶ 金道宗=남과 북이 미학적 원리에서 상당한 차이를 가진다하더라도 민족정서는 남아있고 또 교류가 시작되면 이같은 차이점은 봄눈 녹듯이 사라질수 있는것 아닐까요.
▶ 金柱完=물론 동질성이란 측면을 전혀 도외시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동질성이란 회복의 문제가 아니라 찾아내고 구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북한의 예술가들은 매일 출퇴근하고 배급을 받는 공무원 신분입니다. 남한의 예술가들은 철저히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지배를 받지 않습니까. 통일시대의 예술은 북한의 주체사실주의의 유일사상 우상화 등 독소 요소와 남한의 자본주의적자유주의의 소비적이고 퇴폐적인 요소를 제거한 `최선의 우성 결합', 즉 북한의 금욕주의 절제 등과 남한의 자율성 생산성 개방성 등의 결합이 이뤄내는 작품일 것입니다. 그 전제는 예술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것입니다. 남북의 잠재적역량이 하나로 모아져 확대 실현되고 개개인의 삶이 풍요해진 가운데 높은 문화적 수준에서 민족정체성이 발현되는 그런 예술이어야 할 것입니다.
▶ 사회=중국 중앙민족대학의 김경진 교수는 통일철학의 원리로 `민족 융합과화합의 원리'를 주창하면서 화생 화처=공존 화립 화달 화애=공애=겸애의식 등5화(和)의 원칙을 제안하였습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金道宗=5화의 원칙은 헤겔의 변증법적 원리에 동양의 음양론을 발전시켜 통일의 원리로 삼자는 것입니다. 이것을 융합과 화합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 사회=이번 행사에서 대회장인 대한철학회 김위성 회장은 기조발표를 통해통일은 의지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라 의미(철학적 내용)가 있어야 한다고말했습니다. 통일의 철학과 이념, 원칙이 있다 하더라도 통일을 이루려는 강력한 의지가 없다면 그것은 공허한 것이고, 통일의 의지가 있되 통일의 기본정신이 없거나 올바르지 않다면 그것은 자칫 맹목적인 통일, 무원칙의 통일, 철학없는 통일이 될 것이라는 의미로 해석해도 좋겠습니다.
이제 왜 철학자들이 통일을 이야기하는가, 통일을 준비하는 통일시대의 철학은무엇인가를 밝혀야 할 단계인 것 같습니다.
▶ 金道宗=저는 21세기를 문화적 생산양식의 사회라고 규정하고 싶습니다. 민족정신이 세계정신과 따뜻한 만남을 이루는 진정한 민주주의, 진정한 민족주의가 아닐까요. 물론 배타적 민족주의나 국수주의는 배격해야 겠습니다. 통일문제는 정치 군사적인 부문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닙니다. 민족적 차원 뿐만 아니라 세계사적, 세계 철학의 차원으로 통일문제에 접근해야 할 것입니다.
▶ 金柱完=공감합니다. 통일문제에 대한 담론을 갓 시작하면서 통일시대의 철학이 무엇이라고 단번에 규정한다는 것은 성급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우리의통일은 프랑스혁명이나 산업혁명처럼 세계사적인 보편성을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 金强一=대부분 사람들이 21세기를 낙관적으로 보고 있지만 저는 지금보다더 비인간적인 상황이 일어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본의 논리가지배하는 한, 우리가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강대국의 입김에 내둘린다면 우리민족의 고통은 계속될 것입니다. 그때문에 세계의 흐름을 주도하는 전략을 갖춰야 하고 그 이념은 민족주의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 사회=이번 좌담회의 논의를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통일을 위한 통일의 철학은 첫째, 정치철학적으로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이라는 7.4남북공동선언의 3대 원칙을 재확인하고, 둘째 절차상의 합리화와 논의의 공개성이전제돼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천민자본주의와 집단적 빈곤이라는 남북한의 현실을 극복하는 자본주의적 자유와 사회주의적 평등이 질적으로 높은 차원에서융합되는 것입니다. 진정한 민주주의, 국수주의나 배타주의가 아니라 세계와의따뜻한 만남을 이룰수 있는 진정한 민족주의의 확립을 빼놓을 수 없겠습니다.
철학적 물음(존재 인식 가치)은 바로 인간이란 어떤 존재이며 어떠한 삶의 양식이 바람직한 인간적 삶인가하는 물음으로 귀결된다고 하겠습니다. 이러한 물음을 화두로 삼으면서 올바른 통일철학의 형성을 위해 많은 철학자들이 지혜를모았습니다. 이러한 모색이 통일의 의미와 내용을 풍요롭게 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러한 지혜가 민족 구성원의 동의를 얻을 때 실천적 동력을가질 수 있고, 통일의 의지를 불태우는 계기를 마련해주면서 위의 통일을 앞당기는데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좌담회에서 합의된 결론을 도출한 것은 아니지만 통일 논의의 새로운 출발점(철학적 모색)을 마련하였다는데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싶습니다. 오랜 시간 수고하셨습니다.
<정리=정상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