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키스트 자유주의/아나키스트 자유주의

[인물시] 겨울장마 - 老哲學者 虛有 河岐洛 先生 / 김주완 [1989.07.]

김주완 2001. 1. 3. 18:40

 

[인물시]


 『죽순』1989년호 수록

제3시집 『엘리베이터 안의 20초』(1994) 수록



    겨울장마

     -- 老哲學者 虛有 河岐洛 先生


                               김주완


겨울 저녁비 내리고

젖은 도시의

거리는 추상의 옷을 입는다,

변형의 계절에 앉아

뼈 추리는 작업 깊은

노안의 철학자는 힘이 들까,

더러 눈물 나고

눈꺼풀 찌르는 속눈썹 아픈

가슴의 빗소리,

잠시 머물다 지나간 사람들의

부서진 숨결들이 되살아나는

토요일 오후 네 시,

봉산동 지선도로변 뉴욕 피자호프의

구석자리 이방에서 일던 안개숲 속

앓는 공화국의 우울한 침묵이

비에 젖는다, 아득히,

먼저 떠난 아나키스트

맑고 맑은 이국의 동지들과 마주앉아

커피값으로 마시는 생맥주잔 너머

역사가 빨아낸 자유의 빛깔은

당신의 눈 속에 흐리고 흐리다,

외계의 장맛비 칼질하는 저녁 때,

 

                         <1989.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