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 <시와 산문> 2018 여름호(통권 98호) 76~77쪽 발표
아나키스트 김성국 교수
살아있는 것은 모두가 잡종*이었다
잡종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다
저쪽과 이쪽을 모두 친구로 삼고 싶어
너도 자유, 나도 자유였던 처음
떠나온 곳을 돌아보는 사람이 있었다
주어진 것이 빈손뿐이던 출항은 설레었다
살아 있음은 경건하고
개인은 자연에서 왔으므로 자유이며 하늘이라
사람을 사랑하여 사름하는 사람이 있었다
바닷가에서 바다를 보며 바다가 되고 싶었던 사람
해적처럼 붉고 더운 피를 가진 자유의 수행자가 있었다
35세 연상의 허유** 선생이 대단하다, 존경한다 했던
높고 먼 시선을 가진 오롯이 키 큰 사람 하나
부름에 응답하는 푸른 사람은
선혈 같은 동백꽃이 되어 밤새도록 피었다
오는 대로 받아들이는 해방의 바다를 꿈꾸며
바람을 가르며 잘라 온 한 떨기 수평선을
입춘 무렵이면 펼치고 또 펼쳤다
마침내 소리가 되어 먼 들판을 가로질러
눈물겹게 다가오는 것은 모두가 잡종이었다
세계의 빛이 모이는 남쪽 바닷가
잡종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었다
* 아나키스트 자유주의자의 길을 가면서 잡종을 핵심 키워드로 내세우고 있는 김성국(1947~ )은 신국판 932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독보적인 저서 『잡종사회와 그 친구들 : 아나키스트 자유주의 문명전환론』(이학사, 2015.12.)으로 제62회 대한민국학술원상(2017)을 수상하였다.
** 현대 한국의 제1세대 철학자이자 아나키스트였던 하기락(1912~1997) 교수의 아호. 아나키스트로서의 그의 사상과 삶을 조명한 김춘수의 시 「허유(虛有) 선생의 토르소」, 「제18번 비가(悲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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