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유(虛有) 선생*의 토르소/김춘수
안다르샤
잡풀들이 키대로 자라고
그들 곁에
머루다람쥐가 와서 엎드리고 드러눕고 한다. 그
머루다람쥐의 눈이 거짓말 같다고
믿기지 않는다고
장군 후랑코가 불을 놨지만, 너
천사는 그슬리지 않는다.
안다르샤,
머나먼 서쪽
봄이 가고 여름이 와도 그러나
죽도화는 피지 않는다.
피지 않는다.
* 아나키스트 하기락(河岐洛) 선생의 아호
▲추·천·노·트
시인이 직접 주를 달아 허유 선생은 '아나키스트 하기락(河岐洛) 선생의 아호'라 하였다. 안다르샤는 ‘스페인령(領), 1930년대 아나키즘의 본거지’라고 또한 주가 달려 있다. 이 시는 아나키즘에 관한 시이지만 시의 본문에는 정치적 내용이 흔적도 없다. 시인의 눈으로 보기에 아나키즘은 “잡풀들이 키대로 자라고 그들 곁에 다람쥐가 와서 엎드리고 드러눕고 하는” 자연 그대로의 삶과 동의어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나키즘은 정치적 이념이라기보다 모든 체제며 제도며 전략을 거부한다는 점에서 순수 자연 아니 순수 자연이고자 하는 의지를 가리킨다. 그런 의지가 존재할 수 있을까를 의심하며 스페인의 파시스트 프랑코 장군이 “불을 놓았다.” 그러나 그 의지의 천사는 “그슬리지 않는다.” 그러나, 또한, 그슬리지 않긴 했지만 그 의지가 꽃을 피울 수는 없었다. 영원히 “죽도화는 피지 않는다.” 이 시의 아름다움은 그 불가능한 순수 의지를 우리 마음 속에 조용히 불러일으킨다는 데에서 개화한다. 죽도화는 피지 않는다는 사실로 말미암아 이 시가 피었다. 시란 이런 것이다. 불가능성을 불가능성 자체의 현존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시는 문명도 테러도 아니다. 불가능성을 불가능성 자체의 현존으로 제시하는 시는 문명을 반성케 하며 동시에 테러도 반성케 한다.
(정과리 문학평론가ㆍ연세대 국문과 교수)
조선(2001.10.30)
제18번 비가悲歌 /김춘수
공자가 인仁을 말하고
노자가 천지불인天地不仁을 말할 때
개가 달 보고 짖어대고
지구가 돌고 도는 것을 보고 있을 때
밤 아홉시 뉴스시간에
KBS 화면에
모택통이 평등을 말하고, 한참 뒤에
허유虛有*선생이 자유를 말할 때도
한 아이가 언제나 울고 있다.
엄마 배고파,
*아나키스트 하기락(河岐洛) 선생의 아호
[허유 하기락 선생 회갑 축시]
길이 정정하소서
-虛有 河岐洛 님 頌壽
金 春 洙
길을 찾아 學을 닦는
쉬임없던 그 사이
시간은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어느덧 先生 回甲을 맞으셨습니다.
哲學은 愛知라,
知를 사랑하면 얻게 마련인
깊고 넓은 슬기로
先生 生涯의 포부를 펴고자 하셨습니다.
知는 知에 그침이 아니라,
知는 항상
더욱 뜨겁게 겨레와 그 義를
사랑하는 길잡이였습니다.
先生 六○平生은
길을 위한 學과
보다는 겨레와 義를 위한
뜨거운 사랑의
쉬임없는 시간의 흐름이었습니다.
시간은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어느덧 先生 回甲을 맞으셨습니다.
先生 사랑을 흐르는 시간은
그러나 지금도 아직 젊고
싱싱합니다.
先生 사랑의 (겨레와 義를 위한)
아직도 더운 그 입김,
그 젊음 그 싱싱함,
길이 정정하소서.
1972.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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