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기락 19

한국아나키즘학회 2015 정기학술대회[2015.02.14./경북대 사회과학대 교수회의실]

인간 하기락과 자유* 김 주 완(전 대구한의대 교수/경북문인협회 회장) 1. 자연 상태에서 기억의 유효기간은 일주일이라고 한다. 감정의 유효기간은 조금 더 길어서 18개월에서 30개월 정도라는 보고도 있다. 기억은 오래 가지 않고 망각은 생각보다 일찍 찾아온다. 아나키스트 철학자, 거..

아나키즘, 21세기 창조적 파괴자 [한겨레/2007.01.18.]

아나키즘, 21세기 창조적 파괴자 동구권 몰락뒤 새롭게 부활 아나키스트 1세대 되짚으며 새로운 대안운동으로 재조명 손준현 기자 » <한국의 아나키스트, 자유와 해방의 전사> 김성국 지음. 이학사 펴냄. 1만6000원 지난해 은 아나키스트 박열을 사랑한 여인 <가네코 후미코> 편을 방영했다. 사..

[회고사] 『철학연구』 지령 100집 특별부록 / 김주완 [2006.11.30.]

[회고사/대한철학회 『철학연구』지령 100호 특별부록] 보람ㆍ재미ㆍ걱정 김주완(33대 회장) 대한철학회 학술지 『哲學硏究』에 내가 논문을 싣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후반부터이다. 처음엔 책임실적을 만들기 위해서 싣는 정도였다. 차츰 논문 투고 횟수가 늘어났지만 나는 여전히 학회 운영에는 미..

[창조와 혁신의 대경인 .8] 하기락 철학자[영남일보/2006.11.21.]

[창조와 혁신의 대경인 .8] 하기락 철학자 이론·실천 겸비한 한국 지성사 큰별 /정혜진기자 junghj@yeongnam.com 기자가 쓴 기사 더보기 ◇약력 △1912년 1월 경남 함양군 안의면 출생 △경성 중앙고보, 일본 와세다대학 철학과 졸업 △45년 한국농민조합 조합장 피선 △46년 부산자유민보 창간 및 주필 △47년 대구대학(현 영남대) 철학과 주임교수 △53년 경북대 철학과 주임교수 △61년 대구시 대학교육회 회장 △63년 한국칸트학회(현 대한철학회) 창립 및 초대 회장 취임 △65년 한국철학연구회 회장 △79년 계명대 대우교수 △89년 국제아나키스트연맹 한국대표 △90년 국제평화협회 이사장 △97년 2월 타계 ▶저술활동 △'학문과 인생'(71년), '조선철학사'(92년) 등 25권의 저서 △..

[비문] 허유 하기락 박사 학덕비 / 김주완 [2002.06.08.]

虛有河岐洛博士學德碑 [전면] 한 손에 실존적 자유의 깃발을, 다른 손에 인간적 해방의 깃발을 높이 쳐들고, 일생을 통한 뜨거운 열정으로 이론과 실천을 하나로 어울러 이 나라 현대철학의 제1세대 학자로서 최고봉을 이루셨던 분, 이 곳 안의 출신의 허유 하기락 선생이시다. 2002년 6월 8일 虛有河岐..

진정한 ‘아나키스트’ 하기락[불교신문/2002.07.21.]

진정한 ‘아나키스트’ 하기락 자유 추구한 ‘영원한 靑年’ “한 손에 실존적 자유의 깃발을 / 다른 손에 인간적 해방의 깃발을 / 높이 쳐들고 / 일생을 통한 뜨거운 열정으로 / 이론과 실천을 하나로 어울러 / 이 나라 현대철학의 제1세대 학자로서 / 최고봉을 이루셨던 분… ” 경남 함..

참 스승, 참 철학자 허유 선생님/김주완[영남일보 2002.06.10.]

참 스승, 참 철학자 허유 선생님 허유 선생님 가신지 여섯 해, 이제야 당신을 기리는 학덕비를 세운다. 당초 예정했던 대구시 두류공원에 비석을 모시는 일은 끝내 무산되고 말았지만, 우리는 이를 불행하다 하지 않는다. 번잡함보다는 한적함이, 화려함보다는 소박함이 오히려 더 잘 어울리는 것이 선..

[제막식에 부쳐] 그는 참 스승. 참 철학자/김주완 [영남일보/2002.06.10.]

[제막식에 부쳐] 그는 참 스승. 참 철학자 허유 선생님 가신 지 여섯 해, 이제야 당신을 기리는 학덕비를 세운다. 당초 예정했던 대구시 두류공원에 비석을 모시는 일은 끝내 무산되고 말 았지만, 우리는 이를 불행하다 하지 않는다. 번잡함보다는 한적함이, 화려 함보다는 소박함이 오히려 더 잘 어울..

김춘수 : [시가 있는 이 한 컷] 미당의 얼굴이 참 젊다

[시가 있는 이 한 컷] 미당의 얼굴이 참 젊다 [출처] 계간 , 2002 겨울 (2), 문학세계사, 2002.11.11. 계간 시인세계 | 기사입력 2010/03/19 [10:24] (글=김춘수 시인) 1960년 봄 새학기에 나는 마산에 있던 해인대학(지금의 경남대학교)에서 대구의 경북대학교 문리과대학으로 직장을 옮겼다. 그때 문리과대학장이시던 허유虛有 하기락河岐洛 선생께서 주선해주셔서 그렇게 됐다. 하박사는 아나키스트이시고 우리나라에서는 그 방면의 이론가로서 알려져 있었다. 청마 선생과 친구 사이라서 청마가 그분에게 나를 소개해 주셨다. 대구는 나에게는 생소한 고장이다. 처음 얼마 동안은 몹시 외로웠다. 그러나 차츰 내 주위에 친구가 모이게 됐다. 시조시인 이호우 씨를 위시하여 박훈산, 신동집, 박양..